[취재현장] 망각의 비극, '메르스' 참혹한 대가
2015-06-24 00:01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중동에서 온 감기일 뿐이다. 건강한 사람은 감염될 염려도 사망할 확률도 낮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한국에 상류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메르스로부터 국민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외침은 공허했다. 국민들은 무력한 정부를 보면서 통탄했다. 잔인하고 끔찍한 한 달이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격리 당했다. 건강했던 40대 남성을 비롯해 메르스 앞에 스러저간 사망자도 30명에 달했다. 우리 가족을 문병왔던 사람들, 나를 간호했던 가족들은 바이러스 전파자일지도 모른다는 딱지가 붙었다.
국가적 재난 앞에 드러난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지자체간 갈등, 붕괴된 시민의식, 또 다시 불거진 안전 불감증 문제는 다시 세월호의 악몽을 되새겼다. 우리 사회는 지난 1년간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하지 않는 대가였다.
'감기를 치료하는 병원 명단을 공개할 순 없다'고 버티던 정부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추가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나서야 이를 공개했다. 병원 명단이 공개되자 서울을 비롯해 경기·강원·대전·광주·부산 등 전국에서 메르스 환자가 속출했다.
사망자가 늘고 2·3·4차 감염자가 늘면서 통제 밖 환자가 생기자 환자들의 이름 앞에는 숫자가 붙었다. 그렇게 14번은 '수퍼 전파자'가 됐고, 사망한 36번과 82번은 부부였으며, 118번과 175번은 가족이었음이 드러났다.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숫자로 기억되는 현실은 참담했다. 격리대상자로 선정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딸은 눈물의 편지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남편의 병간호를 도맡던 아내는 남편과 함께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했다. 가족은 오열했지만 장례조차 지낼 수가 없다. 부자가 함께 감염된 일가족은 아버지는 사망, 아들은 메르스를 중국에 수출했다는 낙인이 찍혔다.
우리를 더 큰 비극으로 몰고가는 건 사태를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로 휴업한 학교를 방문해 처음 한 말은 "메르스는 중동 독감이라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였다. 메르스로 매출이 반토막 난 동대문 시장을 방문해서는 머리삔을 사면서 경기침체가 극복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서 호통을 칠 지 언정 국민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늘의 비극을 만든 건 우리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은 대가다. 문제는 이같은 역사가 또 다시 되풀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