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뿔난 삼성물산ㆍ팬오션 운명은?
2015-06-10 17:21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증시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소액주주가 똘똘 뭉쳐 상장사 합병이나 매각 이슈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삼성물산, 팬오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일모직이 흡수합병할 예정인 삼성물산 소액주주는 이를 막기 위해 미국계 헤지펀드와 연대하기로 했다. 팬오션 인수에 나선 하림그룹도 소액주주의 반발에 난항하고 있다. 관련 상장사가 표 대결을 앞둔 가운데 소액주주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삼성물산 소액주주 "달걀로 바위 깨자"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 인터넷 카페에 속한 소액주주는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하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의결권을 위임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3대주주다.
같은 날 오후 2시 30분까지 의결권 위임 의사를 밝힌 주식은 총 65만8807주다. 종가(7만5000원) 기준으로 494억원어치에 달하고, 삼성물산이 발행한 전체 주식 가운데 약 0.4%를 차지한다. 아직 1% 미만 물량이지만, 꾸준히 위임 글이 올라오고 있어 주식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카페 운영자인 닉네임 '독타맨'은 카페에 대해 "달걀로 바위가 깨진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삼성물산 소액주주 이익을 위해 연대에 나섰다고 밝혔다.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이다. 제일모직은 삼성물산 지분 가치를 8조원(주당 5만5767원)으로 평가해, 1대 0.35 비율로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삼성 측 설명에 따르면 주가를 반영한 것이지만, 자산 규모로 보면 삼성물산(29조6200억원)이 제일모직(8조3900억원)보다 3배 이상 크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보유지분을 현물 배당할 수 있도록 정관변경을 요구하고, 삼성물산과 이사진에 대한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주총은 다음달 17일 열린다.
법원이 엘리엇 측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표 대결이 불가피하다.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의결권이 있는 주식 3분의 1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 주주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엘리엇 측(7.12%)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삼성물산 대주주 지분(13.8%) 규모를 봤을 때 관건은 우호세력 확보다.
엘리엇은 이 때문에 이미 연대의사를 밝힌 소액주주를 비롯해 외국인 주주에게도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33.9%다.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가 엘리엇에 편승할 경우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아직 엘리엇과 연대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 기관투자자도 삼성물산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합병 무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5만7234원)보다 높아 찬성 의견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합병이 무산돼도 삼성물산은 합병비율 재산정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실패 시 재추진이 쉽지 않은 만큼 삼성 측은 파격적인 주주친화정책으로 주주와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림 팬오션 인수 무산되나
하림그룹은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해운업체 팬오션을 1조79억5000만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미 2월 본계약도 마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림 측이 제시한 20% 감자안에 소액주주가 반발하면서 인수는 무산 위기에 처했다.
감자안이 담긴 변경회생계획안은 12일 열리는 이해관계인 집회에서 채권단 3분의 2, 주주 2분의 1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팬오션 소액주주 권리찾기' 인터넷 카페에 속한 소액주주는 감자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헐값 매각이라는 것이다. 하림에게 돌아가는 3자배정 유상증자 발행가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카페에는 일반 회원 외에도 법무법인, 신협, 농협을 비롯해 총 4500만주에 달하는 우호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집회 참석 신고주식(1억500만 주) 가운데 약 30%에 해당하는 규모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2788만주)보다도 많다. 팬오션 인수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연구원은 "앞서 3월 주총에서 소액주주가 내세운 감사가 선임된 것을 비롯해 최근 성공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예전에는 슈퍼 개미가 부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면, 이제는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소액주주가 뭉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