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최상호 프로골퍼 “40년 프로골퍼 외길 인생에 ‘대충’은 없었지요”
2015-06-04 08:49
하루 연습볼 1300개 쳐 키와 두 팔 길이 같아…최다승·최고령 우승 등 숱한 기록 세운 ‘전설’…‘룰·에티켓 지켜야 골프 더 재미있게 칠수 있어’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한 것이 골프입문 계기
반듯한 생활·꾸준한 노력으로 후배들에게 귀감
‘프로는 골프장에서 살아야 한다’는 신념 지녀
최다승·최고령 우승 등 숱한 기록 세운 ‘전설’
"룰·에티켓 지켜야 골프 더 재미있게 칠수 있어"
프로골퍼는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가? 대회장에 가거나 중계화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남서울CC(경기 분당)에만 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프로골퍼가 있다. 최상호 프로다. 1955년 1월4일생이므로 그의 나이는 만 60세가 넘었다. 그런데도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그는 거의 매일 남서울CC를 찾는다. 물론 그 골프장의 헤드프로인 까닭도 있지만, 그의 유다른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골퍼는 비즈니스맨이 아닙니다. 골프만 생각해야 합니다. 훈련이나 연습을 생활화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런 면에서 ‘골프선수는 골프장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철칙입니다. 그래야 매일 반복된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지요. 후배들에게도 집 근처의 골프장에 가서 무보수로 근무하라고 권장합니다. 좋은 성적을 내온 이유도 있겠지만, 제가 남서울CC에서 25년째 연습할 수 있는 것은 프로골퍼로서 행운입니다.”
그는 지난달 남서울CC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투어 ‘GS칼텍스 매경오픈’에 출전했다. 시니어투어에 가도 한참 갈 나이였지만, 후배들이 무색할만한 성적을 냈다. 그는 지금도 주 3∼4라운드를 하면서 경기 감각을 유지한다. 부상 염려 탓에 요즘엔 체력훈련은 줄였다. 물론 18홀을 걸어서 라운드할 수 있는 기력과 체력이 있는한 선수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다.
“프로골퍼의 ‘외길 인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여러가지 기록도 남겼으니 제 골프 인생은 ‘대성공’이라고 자평합니다. 더욱 ‘즐기는 것’ ‘재미있는 것’으로 치자면 골프는 최고의 운동 아닙니까? 다만, 다시 태어나도 프로골퍼가 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점은 더 생각해봐야 하겠네요.”
성공한 프로골퍼이지만,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 노승열 등 후배들처럼 세계적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는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로스, 톰 왓슨, 톰 카이트, 그레그 노먼, 베른하르트 랑거, 이안 우즈넘, 닉 팔도 등 왕년에 세계골프를 호령했던 ‘빅 네임’들과 라운드해봤다. 그들과 라운드를 통해 한 수 배운 것이 오늘의 최상호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체력·거리 열세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떤 이는 ‘최상호정도의 선수라면 일본이나 미국의 시니어투어에 도전할만 하지 않았나’고 지적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두 나라의 시니어투어에 도전했다. 2004년 말에는 미국에서 두 달정도 머무르며 챔피언스(시니어)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에 응시했다. 2차전에서 탈락했다. 시니어투어는 좀 다르리라고 예상했지만, 역시 그들에게 한참 뒤떨어진 ‘거리’와 체력이 문제였다. 그 이듬해에는 일본 시니어투어에서 약 1년간 뛴 후 귀국했다. ‘투자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와 대회장까지 가는데 드는 돈이 한 두 푼이 아니더라고요. 짐을 들고 이동하다 보니 부상을 염려한 나머지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일본 시니어투어도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런 ‘옥에 티’는 있었지만, 지금도 다음날 라운드가 예정돼 있으면 설레는 것은 일반 아마추어나 다름없다. 골프 입문 50년, 프로데뷔 40년 가까이 되는 정상의 프로골퍼에게 골프는 어떤 마력으로 다가올까.
“골프는 혼자 자연과 더불어 하는 운동입니다. 룰을 어기려는 충동이 일지만 그것을 억누르며, 뜻한대로 볼이 나갔을 때의 성취감이란…. 또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점, 나이 들어서도 젊은 사람들과 기량을 견줄 수 있다는 점도 골프이 마력이지요. ‘달인은 한 분야에서 약 20년 살아온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근 40년간 프로골퍼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골프 달인’은커녕 퇴보하고 있으니 원…. 골프는 당구나 볼링 등과 달리 뜻대로 되지 않은 스포츠여서 사람들이 푹 빠지는 것 아닐까요.”
최상호의 이미지에는 성실, 부단한 연습도 들어있다. 40년동안 한결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데는 그만의 신조나 좌우명이 있을 법하다.
“프로는 욕심이 있어야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저에게 ‘대충’은 없습니다. 볼 하나하나, 대회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신조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렵고 추상적인 말이지만 ‘연습을 대회처럼, 대회를 연습처럼’ 이라는 좌우명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는 동료 선수들과의 플레이 못지않게 프로암이나 친선라운드에서 아마추어들과 라운드를 많이 해봤다. 아마추어들에게 하고싶은 말도 많을 터였다.
“골프는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골프장에서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도 나오지요. 골프 입문자들에게는 기본기를 확실히 익혀 오래도록 재미있게 치라고 하고싶어요. 그리고 라운드할 때에는 에티켓과 룰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골프가 더 재미있어지고, 동반자 모두가 보람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누군가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다음번에는 동반자들로부터 ‘기피 인물’이 될겁니다. 코스에서는 상식 선에서 행동하고, 기본적인 룰은 책을 보면 금세 깨치게 됩니다. 아마추어들이 스코어를 줄이려면 20∼30분 워밍업을 한 후 첫 샷을 하라고 말하겠어요. 골프는 긴 클럽으로 멈춘 볼을 쳐야 하는 운동이므로 부상 위험이 큽니다. 부상 당하지 않고 즐겁게, 그리고 발전하는 골프를 하려면 라운드전 워밍업은 필수입니다. 골프에서 연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겁니다. 퍼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페트 같은 것을 깔아놓고 퍼트연습을 하면 스스로 요령이나 터치감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퍼트에서는 몸보다는 손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아마추어들이 프로에 근접할 수 있는 부분이 퍼트죠. 퍼트는 정도가 없기 때문에 연습을 통해 그 나름대로의 기교를 터득해두는 것이 긴요합니다.”
최상호의 꿈은 체력이 받쳐주는 한 프로골퍼로 남는 것이고, 그 이후엔 한국골프나 후배들을 위해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한국골프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골프는 내년에 올림픽 종목으로 치러집니다. 한국여자는 금메달을 딸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나의 스포츠이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골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비싼 비용 탓에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선 그린피에 붙는 특별소비세(2만1120원)라도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골프비용이 낮아져 내장객이 늘어나겠죠. 이는 매출·고용 등 면에서 골프업계에 파급효과를 낼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골프장을 찾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국민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부수효과도 있을 것이고요.”
◆최상호 프로골퍼는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경기 고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 우연히 인근 골프장(뉴코리아CC)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프로골퍼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22세 때인 1977년 6전7기끝에 프로골퍼가 됐고 1978년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는 데뷔연도에 여주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매경오픈까지 통산 43승을 올렸다. 국내 최다승 기록이다.
1996년 영남오픈에서 42승째를 거둔 그는 그로부터 약 9년후인 2005년에 만 50세의 나이로 매경오픈에서 우승트로피를 안았다. 국내 최고령(50세4개월25일) 우승기록이다. 그 외에도 그가 갖고 있는 기록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KPGA투어 상금왕 9회, 1978년부터 10년연속 매년 우승, 1981년부터 19년동안 매년 상금랭킹 10위내 진입, 연간 최소 평균타수상인 덕춘상 11회 수상….
그는 지난달 매경오픈에서 또하나의 기록을 추가했다. 만 60세의 나이로 출전해 2라운드합계 2오버파 146타 로 KPGA투어 최고령(60년4개월11일) 커트통과 선수가 됐다. 그는 아들 또래의 후배들과 겨뤄 공동 26위(4라운드합계 6오버파 294타)를 기록해 주위를 놀랬다. 그와 같은 순위에는 김비오 김기환 변진재 등 연부역강한 후배들이 있었다.
그는 골프 입문 초기에 하루 볼 1300개를 칠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두 팔 길이는 키(170cm)보다 길다. 특유의 감각으로 퍼트에 관한한 그를 따를 자가 없는 것으로 정평났다. ‘영원한 프로골퍼’라고 불러도 지나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