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에 일본 '딴지'…무역분쟁화

2015-05-22 08:31
한일 재무장관회의·통상장관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될듯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도 [자료 = 해양수산부]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은 기존 외교 채널을 통한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자 이를 무역분쟁화 함으로써 활용 수단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를 통해 수산물 금수 문제를 양국 무역협상의 정식 의제로 설정함으로써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WTO) 협상 테이블에서 일본과 마주앉아 있는 데다,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일본 주도로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문제가 있어 일본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수산물 금수 문제를 다른 통상 현안들과 나란히 협상 테이블에 올림으로써 이 같은 양국 간의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일 수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오는 23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재무장관회의와 필리핀에서 열리는 한일 통상장관회의에서는 수산물 금수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우선 WTO 분쟁 해결절차에 따른 양자협의를 요청함으로써 WTO 제소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여단계를 거쳐야 하는 WTO 제소 절차를 거치는 데는 최소 12∼15개월이 소요되는 데다 당사국 간의 협의가 지연될 경우 수년이 걸리는 사례도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단순히 WTO 제소 절차에 의존해 수산물 금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방사능 오염 위험이 큰 후쿠시마 주변에서 생산되는 50개 수산물에 대해서만 수입을 금지해왔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면서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 불안이 고조되자 2013년 9월 후쿠시마·이바라키·군마·미야기·이와테·도치기·지바·아오모리 등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에서 나오는 모든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이들 8개 현 이외 지역의 수산물이나 축산물에서도 요오드나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스트론튬 및 플루토늄 등 기타 핵종에 대한 비(非)오염 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하기로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감세를 보이던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이 같은 금수 조치 이후 더욱 감소했다. 원전 사고가 나기 전 연간 8만여t에 달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량은 지난해 3만t 전후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금수 조치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철회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금수 조치 직후 일본 수산청 간부가 한국 보건당국을 공식 방문해 입장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외교 채널을 통해 금수 조치 해제를 요구했다.

세계무역기구(WHO) 식품·동식물 위생검역(SPS) 위원회에서 2013년 10월부터 2014년 3월, 7월, 10월 4차례에 걸쳐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지난해 민간 중심의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수입금지 조치의 과학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과 올 1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를 일본 현지에 파견해 일본 수산물의 안정성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 정부는 이 같은 현지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후속 조치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여러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의 수산물 금수 해제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4년이 지난 현재도 수산물을 포함해 일본산 식품에 대한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금소 조치 해제에 대한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