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같은 한국인' 곽덕준 "예술가는 시대의 증언자가 돼야"
2015-05-04 16:05
이방인의 삶이 개념미술 작가로 우뚝..갤러리현대서 12년만에 개인전
그런데 "한국 국적"이라고 일본어로 말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존재하는 그는 일본 교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 작가 곽덕준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처음 뵙겠습니다"라며 먼저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인사정도와 한국말을 조금 알아듣기는 했지만 통역이 필요했다. (명함 앞면엔 한문으로 現代美術 畵家 郭德俊 이라고 쓰여있고, 뒷면에 일본주소가 적혀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는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가까운 셈이다)
그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서 78년째 '타인'으로 살고 있다.
1937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일본 국적이 박탈됐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그의 신분은 외국인, 즉 재일 한국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었는가 하면 23세에 결핵에 걸려 요양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는 등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곽덕준은 "어린 시절 살던 농촌에선 '조센진'으로 불리고 따돌림을 받았다"며 "일본에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최근까지 국적을 일본으로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일본에서 계속 사느냐고 묻자, "왜 백남준한테 국적을 안따지면서 나에겐 따지냐"며 "난 예술가다. 예술가에게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12년만이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이후 전시가 뚝 끊어졌다. 작가도 의식했는지 "일본에서 한국작가로 유명하다"며 "2017년부터 오사카시립미술관등 일본의 주요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연다"고 했다.
일본에서 개념 설치미술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작가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게 갤러리현대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본격적으로 개념미술을 시작한 1970~80년대의 사진 설치 비디오등으로 채웠다. 작품들은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채 타인으로 살아온 작가의 불편한 정체성과 이를 극복해가는 그의 역정을 엿볼수 있다.
1960년대 회화에서 사진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의 변신을 시도해온 작가는 70년대 이후 일관되게 사회와 개인의 관계, 현실과 의식, 미디어 이미지에 대해 역설적으로 되물어왔다. 그는 "무의미함에는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소멸된다는 허무함이 포함된다"며 '의미의 무의미화 시키는 것이 나의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방인, 경계인의 정체성 혼란은 그를 예술가로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 걸린 비디오작품 '자화상'(1978)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1982년 교토시립미술관 전시에 출품되어 곽덕준이라는 작가의 존재를 대중에게 널리 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영상에서 작가는 금이간 유리판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그 위에 마구 비벼대고 있다. 눈과 코와 입술은 무참히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런 모습이지만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작가의 고통스런 얼굴뒤로 고독한 한 남자를 발견하고 무거움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작은 우주로 생각하고 제작한 작품"이라며 "사람은 누구나 희로애락을 느끼고 얼굴에는 모든 표현이 나타나니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제작했던 37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세계관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는 몇 초간 침묵한 뒤 "그때는 공격적이었는데, 지금은 부드러워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갤러리현대에서 연 이번 전시의 제목은 '타임리스'(Timeless·'영원한'이라는 뜻)다.
전시 제목은 그의 삶을 따라다니는 이중의 정체성이라는 '영원한' 숙제와 끊이지 않는 분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통령과 곽' 시리즈, '계량기', '무의미'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곽덕준만의 아이러니컬한 유머와 냉소를 통해 그가 외치는 무의미속의 의미를 찾을수 있게 작품을 소개한다.
"나는 젊은 시절 한쪽 폐를 잘라냈다. 생사를 넘나들던 6개월간 침대에서 피를 토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일수 없었던 투병생황이 작품의 배경이라고 할수 있다. 나에게 육체는 존재를 인식하는 기반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상성이란 무엇인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새로운 차원이 보인다"
작가는 "예술가는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조리화 불합리한 시대적 특이한 배경과 경험이 예술을 하는데 큰 재산이 됐다"고 했다.
"나는 1억2천만 일본인, 5천만 한국인, 적어도 1억7천만명에세 통하는 현대미술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예술가는 오늘의 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예술가는 누구나 진실이라고 믿는 것의 이면을 들추어내고 풀어내어 구체적으로 배치할수 있어야한다. 결국 예술가란 시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시는 5월31일까지. 관람은 무료.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