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스토리](3) "’중국의 베라왕’에 만족하지 않아"― 란위(LANYU)
2015-04-23 06:00
지난 2013년 중국 대륙에서 개봉한 한중합작 영화 '이별계약'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친구와 헤어지며 내뱉은 대사다. 그만큼 란위(蘭玉 LANYU)는 중국에서 럭셔리 드레스의 대명사다. 한 벌에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란위 드레스는 중국 신부들의 로망이다.
장쯔이, 가오위안위안, 리빙빙 등 중국 여성 스타들을 사로잡은 ‘꿈의 드레스’ 란위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1986년생의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류란위(劉蘭玉)다.
어렸을 적 발레리나를 꿈꾸던 류는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꿈을 접고 패션 디자이너로 마음을 돌렸다. 중국 베이징복장학원 재학 시절인 2005년 류는 용돈 벌이를 위해 ‘뷰티풀 블루’라는 이름의 의상실을 차려 자신의 디자인을 내다 팔았다. 그의 디자인은 고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중국 대표 의류회사인 중방그룹에 스카우트됐다. 하지만 란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패션의 본고장’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패션스쿨에 들어간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2009년 그는 24살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내건 웨딩샵을 차리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고급 웨딩드레스 예복 주문 제작이었다. 자신의 피와 땀을 쏟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고객들과 1대 1로 상담을 나누며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서로 교감했다. 란위의 모든 드레스 제작은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프랑스에서 공수한 최고급 소재의 원단과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살려 단 하루만이라도 여성들이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완성되기를 꿈꾸는 결혼 판타지를 현실화 시켜주는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고급 맞춤 웨딩드레스 사업은 수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수 천만원씩이나 주고 중국산을 사느니 외국산을 사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산은 저질이라는 고정관념부터 타파해야 했다. 게다가 ‘란위=특별하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게 중요했다. 란위는 연예인 고객을 공략했다.
사실 지금의 란위가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중국 미녀스타 뤄하이충(羅海瓊)이다. 2010년 결혼식 때 란위를 선택한 그는 류의 첫 번째 연예인 고객이었다. 웨딩드레스는 특별했다. 크리스털로 섬세하게 장식한 드레스에 밑단은 겹겹의 레이스로 볼륨을 살려 청초하고 우아한 느낌이 묻어났다. 이후 입 소문을 타고 란위는 중국 명품 웨딩드레스로서의 이미지를 탄탄하게 굳혔다.
오늘 날 란위 드레스가 중국 여성의 로망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철저한 노력의 과정이 바탕이 됐다. 얼마 전 중국 보아오포럼에 청년 기업인으로 초청된 란위는 "1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동안 내공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우물만 파는 대신 안주하지 않고 늘 도전한다. 최근 란위는 고급 드레스 주문 제작 사업에서 기성형 드레스, 기성복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에서 맞춤 주문 웨딩샵을 운영하는 란위는 올해 7월까지 5개 고급 기성형 전문 드레스샵도 오픈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 파리, 시드니에도 의상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향후 향수 가방 구두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업계를 초월한 콜라보레이션도 고려 중이다. 앞서 에스티로더와 콜라보레이션 경험이 있는 란위는 향후 스마트폰·자동차·화장품 등에 란위의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오트 쿠튀르’ 패션쇼도 성대하게 열었다. 이곳은 ‘샤넬’이 패션쇼를 연 파리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프랑스의 유명 패션지 '로피시엘’은 유럽 패션계가 주목한 란위를 “중국과 서양적 요소가 잘 어우러진 미(美)를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종종 란위를 세계적인 명품드레스 베라 왕에 빗대 ‘중국의 베라 왕’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 류는 “나는 ‘중국의 베라왕’이 아닌 ‘세계의 란위’가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란위는 아직 역사가 10년도 채 안됐다. 류의 꿈은 란위를 100년 전통의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