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파문] 다이어리 공개되자…여의도 정가 ‘옛 스케줄 뒤져라’

2015-04-16 04:16
여야, ‘특검 도입’ 입장 돌변...야당, 연루 의혹에 ‘상설특검법 고쳐야’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이어 그의 일정이 총망라 된 다이어리(비망록)까지 공개되면서, 15일 여의도 정가는 하루 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찰이 확보한 이 다이어리에는 성 전 회장이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만난 여야 정치인의 이름과 장소가 빼곡히 적혀 있고, 분량만 A4용지로 1000여장에 이른다.
 

검찰이 확보한 성완종 다이어리에는 성 전 회장이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만난 여야 정치인의 이름과 장소가 빼곡히 적혀 있고, 분량만 A4용지로 1000여장에 이른다.[사진=JTBC 화면 캡처]


특히 성 전 회장의 사망 직전 발견된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한 이완구 국무총리, 홍문종 의원 등 8명과의 만남이 세세히 적혀 있어, 앞서 “만난 적 없다“별로 친하지 않다”고 말했던 이들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지 주목된다.

더구나 이 다이어리에는 이들 8명뿐만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주요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는 점에서, 여의도 정가 인사들은 혹여 자신도 ‘성완종 파문’에 따른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 다이어리에는 새누리당(옛 한나라당)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옛 민주당), 옛 자유선진당 등 여야 정치인들의 일정과 만남이 다수 기재돼 있어 검찰수사가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성 전 회장이 이 기간 동안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같은 국회의원끼리의 만남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야 의원들은 다이어리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성 전 회장과의 선긋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일례로 문재인 대표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였던 김한길 의원은 이날 성완종 다이어리 관련 보도에서 “김한길 당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는…2013년 4월 27일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조찬을 함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된 것과 관련해 먼저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당시 자신의 일정표와 인천 부평구청장 일정표까지 증거로 제시하며 “당시 최고위원이 아니었고, 일정을 확인한 결과 당일 조찬은 당 소속 인천시당 당직자·구청장 등과 인천 계양구의 설렁탕집에서 조찬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파문에 연루될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이완구 총리에 대해서도 여당 내 자진사퇴 여론이 나오고 반응이 싸늘한 데, 혹여 (성완종 다이어리에) 언급됐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도 “지금 (국회의원 사이에서) ‘성완종과 친했다. 잘 안다’는 말은 일종의 금기어”라며 “그의 다이어리까지 공개되면서 더욱 더 성 전 회장과 선긋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여야 의원들의 ‘성완종 금품 로비 의혹’에 따른 정치적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여야는 ‘특별검사(특검)’ 도입을 두고 종전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앞서 성 전 회장이 사망한 직후 리스트가 공개된 지난 10일 오전까지만 해도 새정치연합 일부 최고위원들을 중심으로 특검과 특별감찰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당일 오후 긴급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당 지도부는 “특검은 시기상조”라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반면 14일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이완구 총리부터 먼저 검찰수사” 입장을 밝히며 특검 도입에 소극적이던 새누리당은 15일 다이어리가 공개되자 돌변했다. 이날 오전 김무성 대표는 “검찰수사로 국민적 의혹 해소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특검을 요구하겠다. 국민이 요구하면 특검을 피할 이유가 없다”며 정면승부를 택했다. 전날 유승민 원내대표도 긴급 최고위 직후 “야당이 특검을 요구한다면 저희들은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향적 입장을 밝혔었다.

종전에 정국을 뒤흔들 ‘메가톤급’ 금품 비리 의혹이 나올 때면, 야당이 특검 발동을 요구하며 공세를 폈고 여당이 먼저 검찰수사부터 하자며 방어전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이처럼 상황이 뒤바뀐 것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을 향해 “특검이 두려워서 망설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어 다이어리까지 공개되면서 정치 비자금 수사에서 야당도 자유로울 수 없고, 비자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대여 공세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선(先)검찰수사 후(後)특검’ 기조를 유지하되 특검을 실시할 경우 현행 ‘상설특검법(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아닌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이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특검 문제와 관련해 “특검이 필요하면 하는 데 하려면 제대로 된 특검을 해야 한다”며 “세월호 협상 때에 봤듯이 권력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사안인 만큼 고도의 중립성 있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