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수 300명→400명 확대 논란…정치권, 독배 들다 ‘철퇴’ 맞나
2015-04-09 03:03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현행 선거구제 불합치 결정으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선거구재획정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국회의원 정수 확대 논란에 집중되고 있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다. 문 대표는 지난 6일 당의 정책엑스포 현장에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국회의원 수는 400명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을 늘린 뒤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도입하면 정치권에 직능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고 여성 30% 할당제도 가능하다는 것이 문 대표의 의원 정수 확대 명분이다.
전문가들 역시 의원 정수 확대가 이뤄지면, 선거구 재획정에 따른 지역구 의석 유지와 비례대표 확대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특권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의원 정수 확대란 ‘독배’를 과연 정치권이 실제로 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문 대표의 발언 이후 당내 대권 경쟁자인 안철수 의원이 앞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김무성 대표 등 여권의 반대 입장이 줄을 이은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대선 당시 “국회의원 수 100명 축소” 주장을 했던 안 의원은 “지금은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며 의원 정수 확대는 때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도 8일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국회의원 수를 400명으로 늘리는 게 아니라 공무원연금개혁으로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는 것”이라며 문 대표를 비판했다.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문 대표는 “그냥 퍼포먼스로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것”이라고 번복하면서 논란은 한층 더 가열됐다.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새누리당에선 “(문 대표가) 장난이라기엔 너무 중대한 사안이다. 정개특위의 개혁 방향이 역주행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반면 진보진영의 원내 진출 확대를 기대하는 정의당에선 “문 대표는 장난하실 분이 아니다. 당론으로 (정수 확대를) 제시하라”고 반겼다.
특히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문 대표 발언 다음 날 의원 정수를 360명으로 늘리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지역·비례대표 의석을 2대 1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심 대표는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만들어내는 구부러진 선거제도를 바로 펼 때만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진영은 의원 수는 늘리되, 세비 삭감 등의 노력을 통해 전체 입법부 예산은 현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을 국민적 반발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숫자가 대의제를 실현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우리나라 의원 1인은 국민 17만 명을 대표하고 있어, 문 대표의 말처럼 OECD 국가 중에서 의원 수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의원 1인 유지에 연간 7억 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고 과도한 특권이 부여되는 되는 데다, 비례대표도 전문 직능보다 당론을 앞세우는 현행 정치현실 속에서 국회의원을 되레 줄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과 함께 국회의원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거세다.
19대 여당 의원 중 처음으로 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한 김세연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정치시스템의 민주성, 효율성이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선진국과 다른 상황에서 단순한 인구대비 국회의원 수만 강조하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의장은 그러면서 “지금은 오히려 의원 스스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보다 강력한 정치쇄신과 개혁을 이뤄내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에서 의원 정수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회 정개특위는 8일 오후 3차 전체회의를 갖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토대로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및 정당법, 정치자금법들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특히 정개특위 여야 간사인 정문헌, 김태년 의원은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구를 획정하는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서 마련한 획정안에 대한 국회의 수정 권한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이런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정개특위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국회의원 정수를 40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발언을 둘러싼 여야 간 찬반 논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