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하겠다” 말하는 기업, 정부에 정면 반박
2015-03-05 16:39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기업의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내세운 국내 투자확대와 고용창출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 바짝 엎드려 있던 경제단체들이 오랜만에 대정부 공세를 나서면서 기업들도 일제히 “못 하겠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올해 임금인상률을 1.6% 안의 범위에서 조정할 것을 5일 회원사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노총은 정한 올해 임금인상 요구율 7.8%(24만5870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박병원 회장 취임 후 경총이 내놓은 첫 발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포럼 강연에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며 임금인상을 강조한 바로 다음날 맞받아친 것이다. 경총은 제도변화에 따른 임금인상분이 1.6%를 초과하는 기업은 임금을 동결할 것을 권고해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임금동결을 발표한 삼성그룹과 비슷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진 현대자동차와 SK, LG 등 주요 대기업들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기업은 임금동결에 이어 채용도 줄일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10개 대기업중 7~8개사가 올 상반기 채용을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전경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도 동일한 조사를 했으나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채용 전망이 어둡게 나온 데다가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분위기를 감안해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상황이 더 안 좋게 나왔지만, 기업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를 강행했다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기업의 반발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해 온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기업 활동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은채 오히려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지난 수년간 일정 수준 채용을 꾸준히 진행했고, 연구·개발(R&D) 및 시설 투자도 착실히 진행해 왔다.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창조경제 혁신센터 설립·운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기대했던 내수 부양 정책은 정치권과의 엇박자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규제 철폐도 더디게 진행되는 데다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다수의 세제 법안이 통과돼 부담은 갈수록 늘어나기만 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죽음이 눈 앞에 있는데 천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지금 기업이 처한 상황이 ‘구석에 몰린 쥐’다”며 “한편으로는 주머니 쌈짓돈까지 빼앗아 경제성장에 기여하라고 윽박지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기업 정서를 앞세워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며 숨통을 조이고 있다.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기업정책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재계 일부 기업들이 해외로 사업장 이전을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해외 이전설이 나돌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때는 해외 사업장을 국내로 복귀시킬까도 생각했으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접었고, 오히려 국내에 남아있는 사업장도 해외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국내 직원들의 반발이 우려돼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지만, 이른 시일 안에 윗선에서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