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렬 입법” 김영란법, 국회의원 20대 총선 피하려 1년반 유예

2015-03-03 20:08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입법 과정의 진통 못지 않게 실제 시행시점까지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김영란법이 이날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지난 2012년 8월16일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첫 제정안을 내놓은 이후 929일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정부안이 2013년 8월 국회에 제출된 시점부터 따지면 꼬박 1년 6개월이 걸린 것이다.
 

김영란법 오늘 국회 본회의 처리, 재선 노린 19대 국회의원들 20대 총선 선거운동 적용 피하려 1년반 유예 꼼수[사진=김세구 기자 k39@aju]


여야가 2일 오후 4시간여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에 이른 김영란법은 과거 '벤츠 여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처럼 스폰서 형식으로 뇌물을 받았으나 대가성,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처벌을 피해가던 현행법상 허점을 보완한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김영란법이 과잉금지의 원칙과 양심 및 언론의 자유 침해 등 위헌 소지가 다분한 독소 조항을 담고 있어, 법 시행 시 위헌소송 제기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또한 여야 정치권이 KBS·EBS뿐 아니라 모든 민간 언론사, 국공립학교 교직원, 사립학교 교직원들까지 법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면서도 사립학교 이사장과 이사 등은 빠져 논란이 예상된다.

언론인의 경우, 언론의 취재 활동과 향응 제공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법 적용시 혼란을 야기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공공성을 위해 언론인을 포함시켰다면 의사나 변호사 등 다른 직역도 포함시켜야 형평성이 맞고, 그렇지 않으면 위헌 소지가 다분해 과잉 입법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더구나 김영란법 적용 대상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만 국한시킨 것도 허점으로 꼽힌다. 배우자는 불가능하지만 자녀나 형제자매 등 다른 직계 가족이나 친인척들의 우회적 금품수수가 가능해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 시점을 1년 6개월 유예한 것도 문제다. 이는 현직 국회의원들의 전형적인 ‘꼼수 입법’이라고 지적이 쇄도하고 있다.

당초 원안에는 유예기간이 1년이었지만, 여야 협상 과정에서 6개월 더 늘려 2016년 9월부터 적용했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13월 치러지는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현직 19대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 적용에서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 놓은 셈이 됐다.

전문가들은 “현직 국회의원이 정작 자신들이 적용도 받지 않을 법을 만든데다 임기내 수정도 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입을 모았다.

줄곧 김영란법 처리 속도전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이날 통과된 김영란법에 대해 “선정주의적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꽂혀 합의한 ‘졸렬 입법’”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공직자가 자신의 가족 또는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이 제외된 것이 문제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 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이 친인척들을 특정 기관에 위장 취업시키거나, 특정 단체에 고문을 맡고 대학에 특강 나가는 것 등 이해 충돌 관련 사례가 너무 많다”며 “그런데도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이해 충돌 금지 관련 조항은 쏙 빠졌다”고 꼬집었다.

김영란법의 부작용 등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펼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할 말은 많지만, 고민 중”이라며 “국회에서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을 여론에 밀려서 통과시킨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이런 법을 만들 때는 차분하게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국민 여론에만 너무 휘둘린 것 같다”며 “충동적으로 법을 제정하는 것을 목격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