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붕괴…한국경제, 심장이 식어간다]기업도시 위기, 지역경제로 확산
2015-02-08 16:13
아주경제 양성모·정치연·이재영·박재홍·김지나·이소현 기자 = “4000원 짜리 라면, 1500원 짜리 김밥을 사 먹는 것도 주저하고 있어요.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다들 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정문 앞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 모(60)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부결된 임금 및 단체협상으로 인해 성과급 지급이 보류돼 주머니 사정이 얇아진 직원들이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그나마 김 씨의 가게는 자리가 좋아 그럭저럭 매출은 올리지만 정문에서 벗어난 음식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밤손님 장사가 안되는 것도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저녁이나 주말·휴일이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붐비던 도심 시내 중심 상가도 저녁 12시도 안 돼 손님이 끊긴다. 음식점은 물론 택시기사, 대리운전 기사들도 일거리가 없어 푸념이다.
각 지방 통계청이 발표하는 지역별 광공업 생산지수를 보면 제조업 위축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역별 광공업 생산지수는 광업, 제조업을 비롯해 전기·가스․증기업 및 수도사업을 포괄한 지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인 지난 2010년을 100으로 놓고 계산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전국의 광공업 생산지수는 107.7이다. 이는 지난 2013년과 같은 수준이다.
이에 반해 지난해 생산지수가 떨어진 지역은 울산(110.1)을 비롯해 서울(98.4), 부산(100.8, 경남(100.4), 전북(102.3), 전남(100.6)이었다. 이중 울산과 경남, 서울은 2012년 이후 2년 연속 하락했다. 경북(97.5)은 다소 오름세를 나타냈지만, 2년 연속 기준치인 100에 못 미친다.
광공업 생산지수 기준선인 2010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제조업 생산이 급락했던 때다. 다시 말해 IMF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 업황이 가장 불황이던 시기다. 울산과 부산, 경북, 경남, 전북, 전남 등은 전자·정보통신기술(ICT)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 등 한국의 주력 제조업이 소재한 도시들이 위치했다. 이들 도시의 광공업 생산지수가 2010년에서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소 조선소의 도미노식 도산으로 조선산업이 붕괴 위기에 처한 통영시는 호황기에 매물이 없어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던 곳이다. 지금은 조선소 주변 원룸촌에 입주하려는 사람이 없어 시세가 가장 싼 곳으로 전락했다. 상권은 이에 앞서 무너졌다. 그나마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조선소 종사자가 아니라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네 인심도 험악해지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세수입이 줄어 원활한 정책 추진이 어려워진 지자체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방안 마련을 고심 중이지만 뚜렷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진덕영 거제시청 조선경제과 과장은 “지난달 말 삼성중공업의 임금 및 단체협상 타결로 800여 억원 가량의 돈이 풀릴 것으로 예상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하지만 중소 협력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력사도 거제에 뿌리를 내린지 오래된 지역 기업이라 이들이 어려우면 지역 경제에 부담이 된다. 중소기업 지원 자금을 늘리는 등 지원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근 도시에 취업이 어렵다 보니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젊은 인재의 타 지역 유출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창원시의 경우 1990년대 급성장 시기에는 고등학교가 부족할 정도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는 성장동력 둔화로 진학 학생의 성장속도가 둔화됐으며, 한때 경북대학교 수준의 지원율을 보였던 창원대학교의 인기도 과거에 미치지 못한다.
출산률 감소에 더해 자녀를 서울이나 해외로 진학시키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지역 기업은 인력난으로 사업장을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