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5월 방러'에 박근혜 대통령 '갈까 말까' 딜레마

2015-01-22 14:43
박 대통령, 러시아 초청 수락하면 남북정상 조우 가능성 높아…대북관계·동북아 정치 지형 급변

[사진=청와대]



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제2차세계대전 승전7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 행사 참석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러시아 측이 확인하면서 남북 정상이 러시아에서 조우 내지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선 러시아 방문 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는 22일 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5월 일정은 아직 확정된 게 없고, 여러 가지 일들이 경합을 하는 것이어서 그런 상황 속에서 검토할 내용"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민 대변인은 '검토'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판단해달라"고 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이 박 대통령의 참석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는 "김 위원장의 참석이 확정된 것인가? 보도를 보면 '긍정적 답을 보냈다'라고 표현됐다. 이쪽에서 서둘러 입장을 발표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김정은 제1비서를 비롯해 오바마 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등 세계 각국 정상에게 승전 행사 초청장을 보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가 실현될 경우 동북아 정치 지형은 물론 우리의 동북아 및 대북전략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기게 됨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수락하게 되면 김 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 형태든, 기념식 행사장에서 조우하는 형태든 남북정상 간 ‘빅 이벤트’가 성사되는 셈이어서 그동안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요구해온 박 대통령의 대북 원칙이 무너질 공산이 크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첫 다자외교 데뷔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자칫 김 위원장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은 집권 4년차에 첫 국제무대 데뷔 무대가 될 뿐 아니라 북한 정권 수립후 첫 다자외교 행사에 참석하는 지도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은둔형'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외활동에 적극적인 새로운 지도자상을 내외에 알리는 선전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함께 각국 정상을 한꺼번에 만남으로써, 북한으로선 단박에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미국의 대북 전략 수정을 압박하는 포석이 될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 역시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야심차게 내건 ‘신동방 정책’을 위해 이번 5월 행사를 계기로 남북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세계와 러시아간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반(反)러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초청을 거절했다.

취임 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강력하게 천명하며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당위성을 알려온 박 대통령으로선 러시아의 초청을 기피할 이유나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해 북-러간 경제협력사업인 나진-하산 철도연결 프로젝트 등에 우리 자본을 투입해 남-북-러 협력을 이끌어내기로 합의했다.

‘통일 준비’를 올해 핵심 과제로 내건 박 대통령으로선 러시아와 중국 등 동북아 주요국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통일 여건 조성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방문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방러 의도와 전략을 사전에 면밀히 살피면서 김 위원장의 방러 확정시 박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을 고려할 때 늦어도 4월초에는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