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편한 대기업’ 버리고 창업의 길로, 조성우 덤앤더머스 대표

2015-01-21 15:55

조성우 덤앤더머스 대표[사진=덤앤더머스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11년 8월, 갑작스런 그의 사직서 제출 소식에 조선업계 출입기자들은 당황스러웠다.

조선업계 세계 1위 현대중공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면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고, 기자들과의 원활한 스킨십으로 인기가 많았던 조성우 대표는 예고도 없이 회사를 뛰쳐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으로 경제가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던 당시였기에 조 대표의 퇴사는,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새로운 도전에 응원을 구하는 한편, 우려와 걱정도 많이 했다.

2개월 후 조 대표는 덤앤더머스 대표 명함을 들고 동지들 앞에 나타났다. ‘홍보맨’에서 ‘창업자’로의 변신. 1981년생으로 당시는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커다란 결심을 한 것이다. 셀러리맨 시절에는 솔직히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됐지만, 최고경영자(CEO)는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다.

그 부담을 감내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자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물론 그 웃음 속에 숨겨진 인내와 고통의 과정은 컸다.

“제 나름대로 멋있게 사직서를 던지고 무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해를 더할수록 성공이라는 것이 처절한 실패 경험의 축적으로 아주 천천히 가까워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성공보다는 생존을 위해 뛰어다녔던 게 사실이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첫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라꾸라꾸였다. 출퇴근할 시간도 아까울 만큼 산더미처럼 쌓인 일처리에 질릴 정도였다. 업무 강도는 지금도 그대로라 그 라꾸라꾸는 마포에서 양평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지금까지 조 대표의 곁을 지키고 있다.

벌써 4년차다.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많은 선배 창업가들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겪어보니 세상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조 대표는 친한 선배가 전한 “홀로서라”는 말이 가장 많이 떠올랐단다. “사회생활에서 어느 누구도 날 위해 존재하지 않고 나와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언젠가 날 떠날거고, 스스로 설 능력이 없으면 넌 그냥 그런 사람이 되는 거야. 생각만큼 평소 훈련하지 않으면 혼자 힘으로 이겨나가는 거 참 쉽지 않아”라는 말을 CEO가 되고 보니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는 “홀로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힘들고 지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선다는 것은 한 단계 성장을 야속하게 약속하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달게 받느냐 아니냐는 철저하게 개인의 몫 일텐데 저는 달게 받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몸은 떠났지만 여전히 조 대표는 현대중공업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절대 잃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해봤어’라는 말씀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해봐야 결과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2013년 10월 어느 날, 조 대표는 여의도의 한 호텔에 물 300박스를 배달했다. 세상을 알고 싶어 택배 직원분들이 해주셨던 일을 직접 해보기로 한 것이다. 층층마다 물박스를 들고 올리가면서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짐을 지는 요령이 없는 조 대표는 기껏해야 3박스만 들었다. 한번에 4~5박스씩 나르는 베테랑 아저씨에게 뒷짐지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니 절대 안가르쳐 주더란다.

조 대표는 “아저씨께서 ‘이 일 평생할거냐? 한번 배우면 계속해야 되니까 그냥 3박스씩만 나르고 지금의 초심만 잃지 말라’고 하시더라. 뭔지 모르지만 맘이 짠해졌다. 그래 처음 덤앤더머스를 창업했을 때 가졌던 목표를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힘들 때마다 당시의 기억을 늘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