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몰두한 '정남희 산조' 짠 황병기 '가야금 산조' 앨범 발매

2014-12-09 15:31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한국 창작음악의 태두이자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 명인(78)이 '황병기 가야금 산조' 음반(씨앤엘 뮤직)을 발매했다.

 마치 한옥의 사랑방에서 마주 듣는 듯한 감동을 선사하는 뛰어난 레코딩과 가야금 산조 전 바탕과 세개의 짧은 산조 모음이 음반 두장에 수록되어있다.

씨앤엘 뮤직 오대환 PD는 "초고성능 마이크를 사용해 악기 소리는 물론 공간 여음까지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리버브레이터 등 이펙터의 사용은 최소화함으로써 가공되지 않은 원음 그대로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며 "이 앨범에서는 연주자의 숨소리와 악기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잡음까지도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연주의 일부로 수용하여 살려두었다"고 밝혔다.

 도올 김용옥은 "평생을 연주자로 작곡자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켜오신 황병기 선생께서, 그 숱한 창작곡을 선물하신 끝에, 一甲의 바퀴를 돌고난 연륜의 깊이에, 새로이 산조를 짜내어놓으시는 이 사건은 족히 우리 조선민족의 예혼의 한 치열한 정신의 전범이라 해야 할 것"이라고 추천사를 썼다.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짜고나서


 중학교 2학년 때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갔는데, 다음 해인 1951년 우연히 김철옥(1910~1968)이라는 분을 만나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김철옥 선생은 어렸을 때 한숙구(韓淑求)의 제자였던 부친 김경식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후일에는 또한 강태홍(姜太弘)을 사사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부산의 유지이자 저명한 무용가인 김동민(金東旻)의 살림집과 무용연구소를 겸한 자택에 방을 얻어 살면서 가야금 산조, 병창, 시조, 장구 등을 가르쳤다.

 몇 달 동안 이곳에서 향제 풍류와 산조를 배우던 중 용두산에 국립국악원이 피란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김영윤(金永胤) 선생에게 정악을 배우고, 1952년부터는 김영윤 선생의 소개로 김윤덕(1918~1978) 선생을 만나 그의 자택으로 다니며 가야금 산조도 배웠다.

 김윤덕 선생은 1946년 무렵에 서울 종로 3가 단성사 근처의 조양여관에서 정남희(1905~1984)에게 배운 약 47분에 이르는 산조 가락을 그대로 나에게 전수해 주었다.

 김 선생은 “나는 원래 가야금, 거문고, 양금으로 풍류만 했었는데, 서울에 올라와 여러 산조를 다 들어 보고나서 정 선생 산조가 제일 좋아서 배웠어. 이 산조는 꽃처럼 화사하지 않고, 말하자면 잎사귀보다 가지, 가지보다 줄기, 줄기보다 뿌리가 실한 산조야.” 라고 말씀하면서 종이 위에 나무 그림까지 그리곤 했다. 흔히 귀에 쌈빡한 가락을 좋아하지만 그런 데 현혹되지 말고 정남희 산조의 음악적 깊이와 격조를 이해하고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김윤덕 선생의 당부대로 나는 지금까지 50년간 정남희 산조에 몰두해 온 셈인데, 꼭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이 산조가 좋아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동안 심상건, 김취란(성금연류), 김병호, 원옥화(강태홍류), 김죽파, 함동정월 등 여러 선생에게 산조를 배우고 채보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나의 전공 산조는 변함없이 정남희 산조였다. 1960년대부터 김윤덕 선생 자신이 정남희 가락과 강태홍 가락을 섞고 자신의 가락을 삽입하여 새로 김윤덕류 산조를 짰지만 나는 이를 따르지 않고, 정남희 산조를 고집스럽게 지키면서 지난 약 30년간 가락을 손질하고 보충하여,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 등 총 8악장으로 이루어진 산조를 완성했다. 이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는 연주 시간이 약 70분에 이르기 때문에 현행 가야금 산조 중 최대 규모라 생각한다.

새로 보충된 가락에는 우선 정남희 자신의 가락이 있다. 일본 콜럼비아 축음기 주식회사에서 1934년과 1939년에 각각 발매한 두 가지 정남희 가야금 산조의 고음반과 정남희가 1950년에 월북한 후 북한에서 녹음한 산조 테이프의 가락 중에서 고른 것인데, 특히 새로 삽입된 엇모리는 대부분이 북한 테이프의 가락으로 되었다. 따라서 1990년 10월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여 북한의 정남희 테이프를 구한 것을 나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스름 가락은 전부 내가 짰다. 정남희의 다스름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양조 후반의 낮은 음역의 진계면조 가락과 변청 진계면조 가락도 내가 짜서 보충한 것이다. 김윤덕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은 정남희 가락은 되도록 고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중모리의 경드름과 자진모리 앞 부문의 우조 등 몇몇 곳은 수년간 숙고한 끝에 고쳤으며, 중중모리 중 한 가락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생략했다. 그리고 산조 전체를 통일된 음악이 되도록, 부분적으로 손질하거나 가락을 짜서 넣은 곳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정남희가 북한에서 짠 엇모리 가락을 중중모리 다음에 두었는데, 그 도입부에 해당하는 첫 가락은 내가 짜서 넣은 것이다.

 내가 짠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는 고도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흥청거리는 재미로 감상하기보다는 바흐의 파르티타나 베토벤의 소나타를 감상하듯이 음악 그 자체에 몰두하여 관조적으로 감상하기 바란다. 이번 음반 녹음에서 ‘추임새’를 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번 음반은 두 장으로 되었다. CDⅠ은 전바탕 산조(약 70분)이고, CDⅡ는 10분, 15분, 20분으로 짧게 축약한 세 개의 짧은 산조를 모은 것이다. 짧은 산조 1과 2에는 다스름과 엇모리는 없다. 그리고 보너스로 짧은 산조 별가락(진양조)을 수록했다. 전바탕 산조에 없는 특이한 계면조 가락이다.-<황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