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기자의 부동산 인더스토리]장그래는 '미생', 최경환·서승환은 '미숙'
2014-12-08 16:22
전세난 해결 이슈 주도권 싸움은 영업 3팀 오과장 사업제안서 서로 빼앗는 격
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인기 드라마 ‘미생’은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들을 치밀하게 묘사해 제법 보는 재미가 있다. 드라마의 주된 공간적 배경인 원인터내셔널은 민간 기업의 대명사이고, 소속된 상사맨들은 대한민국 샐러리맨들을 대표한다.
민간 기업에서 임원에 오르려면 합당한 성과는 기본이다. 또한 경쟁자에게 트집을 잡힐 만한 과오가 없어야 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가 때대로 작은 과오를 덮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대부분의 과오는 임원 탈락으로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과오를 남의 것으로 돌리는 능력(?)은 기업이란 정글에서 살아남는 생존법 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미생이란 드라마에서도 이 같은 정글에서 살아남기에 능한 인물들이 나온다. 신규사업의 채택을 둘러싼 아이디어의 소유권 싸움에서다. 오 과장이 이끄는 영업3팀이 추진하는 희토류 사업에서 오 과장의 직속 부장이 보여주는 처세는 가히 달인급이다. 희토류의 수급이 원활치 않자 부장은 사업제안서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해당 사업을 오 과장의 단독 제안으로 처리한다.
오 과장의 동기는 고급 일식집에 부장을 초대해 자신의 팀 제안 사업이 채택되도록 줄을 댄다. 결국 희토류 사업은 순서가 다음 차례로 밀린다.
공과 과의 논공행상을 둘러싼 치열한 정글 게임은 하지만 냉엄한 먹이사슬의 관계 속에서 허망하게 결론이 난다. 옆방에서 식사를 하던 전무가 지나다 희토류 관련 사업 제안서를 보고, 자신이 미는 자원팀이 단독 추진하도록 명하면서 게임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 공적을 챙기려던 부장은 입에 다 넣은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전무에게 강탈당한 셈이다. 이래저래 상처만 안게 된 영업3팀은 말없이 남은 음식을 처리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정부 부처 사이에서 벌어진다면 그 같은 상황을 어떤 논리로 이해해야 할까. 철밥그릇을 거머쥔 공무원들이 민간의 생존 논리인 공적 싸움을 벌인다면 그것은 지나친 출세욕일까, 아니면 공허한 주도권 싸움일까.
이해하기 힘든 이 같은 일이 현실에선 비일비재하다. 전셋값 안정 대책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형 민간임대 육성을 둘러싸고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가 힘겨루기를 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기업형 민간임대 사업 참여를 촉구하며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고 한다. 정부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민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창구가 일원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가 똑같은 작업을 각자 한 것이다. 기업형 민간임대사업을 추진하려면 세제 혜택이 수반돼야 해 기재부도 관련 부처에 해당된다. 국토부는 당연히 주택 수급을 총괄하는 주무부처다.
참석했던 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토부와 기재부가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공조를 이룬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업무의 경중에 따라 정부 부처는 원활한 정보 공유를 해야 마땅하다. 전세난을 완화하기 위한 기업형 민간임대 육성책은 주요한 국가적인 어젠다로 부처 간 공조가 절실한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서승환 국토부 장관과 최경환 기재부 장관이 민생 현안을 두고 이슈 선점 싸움을 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영업3팀의 신규사업을 놓고 물고 뜯기는 정글 싸움은 민간 업체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 같은 일이 행정이란 중차대한 공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할 명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정부에 민간 경쟁 체제의 효율성을 강력히 원하면서도 강요하지 않는 것은 원활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한 일종의 면죄부다. 서 장관과 최 장관은 자신들의 월급이 세금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