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한다는데…금융권 계약직들의 여전히 추운 겨울나기

2014-12-08 15:44

 

아주경제 장슬기·홍성환 기자 = "어차피 나갈 사람, 회사에서 뭐하러 키워주나."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 등장한 대사다. 계약직 사원이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표현한 부분이다. 하지만 계약직의 이같은 고충은 드라마보다 현실에서 더욱 잔인하다. 최근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연말을 맞은 금융권의 계약직들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실적 스트레스에 정규직 전환도 불투명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말 인사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은행 계약직들이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저금리 기조로 예·적금 수요가 줄어들면서 영업 스트레스가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특히 계약직의 경우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 때문에 실적 평가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 은행 창구직원은 "실적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실적이 시원치 않다면서 은근히 창구 직원들에게 눈치를 준다"면서 "실적이 부족한 점포의 경우 결국 길거리로 나가서 영업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을 살펴보면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2293명, 1620명이다. 이외에 국민은행 916명, 신한은행 664명, 기업은행 445명, 우리은행 397명이다.

더욱이 실적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정규직 전환 조차 불투명하다는 점이 계약직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앞서 시중은행과 금융노조는 금융기관 고유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은 내년부터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기관별 상황에 맞게 직급이나 직군을 신설하는 방법으로 개선키로 합의하면서 실제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급여 자체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은행 계약직 직원은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새로운 직군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가 들리고 있어 처우는 크게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런 식이면 말만 정규직이지 계약직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실적 악화로 은행들이 잇따라 점포 및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있어 되레 일자리를 잃을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악화된 영업환경에 설계사 실적도 바닥

보험사의 경우도 여전히 계약직 비중이 높은 편이다. 흥국화재의 경우 전체 1292명의 임직원 중 29.8%(386명)가 계약직으로, 업계에서 비율이 가장 높다. 롯데손해보험도 전체 1671명의 임직원 중 20%(335명)가 계약직이다.

특히 올 연말은 제2금융권 계약직에게 더욱 혹독하다. 카드모집인, 보험설계사들의 경우 회사와 별도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채 성과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주로 외주를 통해 고용되는 텔레마케터도 상당수는 계약직이다.

문제는 올 초 발생한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으로 인해 올해 높은 실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시 1억여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금융당국이 텔레마케팅을 통한 보험 가입을 약 3개월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성과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텔레마케터들은 이 기간 업무를 볼 수 없었다.

당시 보험사들은 텔레마케터들을 대상으로 사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이들의 구멍난 실적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올 초 정보유출 사태로 인해 텔레마케팅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어 버렸다"며 "고객들이 전화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올해는 특히 실적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지난 6월부터 실시된 '두낫콜(Do not Call)' 제도도 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고객이 스스로 마케팅용 전화 수신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로, 그만큼 텔레마케터들이 영업을 할 수 있는 고객 수가 줄어든 셈이다.

보험설계사도 마찬가지다. 성과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설계사들은 최근 경기부진으로 보험 해지가 늘면서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5개 생명보험사의 보험설계사는 지난 4월 13만9138명에서 7월 말 13만5455명으로 줄었다. 석달 만에 4000여명이 이탈한 셈이다.

카드모집인들도 신용카드 발급 규제 강화 및 카파라치 제도 도입 등으로 높은 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정보유출 후폭풍으로 지난 3월 한달새 모집인 1000명이 이탈하기도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설계사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가시화된 것은 없다"며 "실적 악화가 지속되는 만큼 업계를 이탈하는 설계사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