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나경원 의원, '터프한 선거 겪고 소프트한 정치로 가다'
2014-11-10 06:04
7ㆍ30재보궐선거 당선 이후 100일 맞은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미니 총선’으로 불릴 정도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올해 7.30 재보궐선거가 어느새 100일을 넘겼다.
이번 재보선 이전에도 ‘스타 정치인’으로 통했던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3선·서울 동작을)은 지난 5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11월 6일이면 재보선 100일’이란 말에, 말보다 먼저 숨부터 골랐다.
전국의 이목이 집중됐던 초박빙 선거를 치르고 새누리당 유일 3선 여성 의원 타이틀을 거머쥔 그였지만, 나 의원은 새삼 감회가 새로운듯 했다.
그에게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굉장히 터프한 선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성과 자생력 면에서 서로 밀릴 것이 없는 정의당 노회찬 후보와 나 의원과의 선거 표차는 불과 929표였다. 1000여명이 안되는 민심 싸움에서 나 의원이 결국 이긴 것이지만, 당사자에겐 그 어느 때보다 피 말린 시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선거현장에서 만났던 나 의원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연일 쉰 목을 부여잡고 비를 맞아가며 “도와달라”고 주민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혔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얼짱 정치인’이 고개를 조아리고 악수를 청하니 어색해하던 동작구 주민들도 어느새 마음을 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7.30 재보선은 정치인생에 터닝 포인트”
“7.30 재보선은 어느 지역이고 할 거 없이 다들 힘들었고, 저희 지역구 상대 후보(노회찬)도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말 터프(격렬한) 선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거는 제 정치인생에서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
터닝포인트. 말 그대로 ‘전환점’이 됐다는 것인데, 과연 재보선 이후 정치인 나경원은 이전과 다른 어떤 길로 걸어가겠다는 것일까. 그는 이번엔 별 고민없이 단박에 “국민의 마음 속으로”라고 말했다.
“지금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에 대해 냉소적이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재보선은) 이를 타개할 집권여당 정치인으로서의 제 역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정치가 좀더 생산적이고 국민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그것이 집권여당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지역구 주민들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핵심 공약인 ‘강남 4구’를 만들기 위한 SOC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장재터널(정보사 터널)의 조기 개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지난 20여년간 동작구민들의 숙원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선이 되자마자 나 의원은 국방부, 서울시와 수차례 협의를 진행했고 그 결과 내년에 첫 삽을 뜨게 됐다. 터널이 개통되면 동작구는 이수역에서 서초역까지 논스톱으로 오갈 수 있게 돼 강남과의 접근성이 한층 높아지게 된다.
“정보사터널이 개통되면 큰 틀에서 강남 4구 실현을 위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를 갖추게 됩니다. 다음은 소프트웨어인데 가장 고민한 것은 역시 ‘교육’입니다. 강남에 못지 않은 교육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첫 성과로 교육부의 ‘인성교육센터’제1호 사업이 동작을 지역구에 마련됩니다. 이를 기회로 인성교육을 기반으로 한 교육환경 개선에 힘쓸 예정입니다.”
나 의원은 공약 실현 뿐만 아니라, 사소한 민원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을 ‘민원의 날’로 삼아, 지역구 사무실에서 ‘나경원의 토요데이트’를 열고 있다. 처음엔 ‘진짜 국회의원이 나오는 건가’ 의구심을 갖던 주민들도 이제는 나 의원 사무실을 동네 사랑방처럼 여길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제가 토요일에 사무실에 나오니깐 너무 신기해 하시는 겁니다. 반겨주셔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간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들과 멀게 있었나 자성하게 됐습니다. 매주 토요일 동작구 사무실로 부담없이 편하게 찾아오시면 좋겠습니다.”
◆ “공천개혁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출발점”
지역 주민들과 막역해져 이젠 ‘동네 아줌마’라고 한껏 몸을 낮춘 나 의원은 그럼에도 여전히 중앙정치계에선 무시할 수 없는 ‘파워 정치인’으로 통한다. 때문에 그가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을 때 과연 그가 당에서 어떤 자리를 맡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설을 뒤로 하고 동작을 지역구를 따낸 나 의원에게 당에서 보은으로 지명직인 최고위원 자리를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다만 정치혁신의 사명을 띄고 출범한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에는 전격 합류했다. 보수혁신위 부위원장이란 타이틀이 주어졌지만, 그는 “못했던 숙제를 하기 위함”이라고 또 한번 몸을 낮췄다.
그가 말한 못했던 숙제는 바로 ‘공천 개혁’이다. 지난 대선 전인 2010년 한나라당 공천개혁특위원장을 맡았던 나 의원은 “공천 개혁이 정치의 여러 왜곡을 풀 수 있는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18대 때 공천개혁특위원장을 맡아 공천 개혁안을 마련했는데, 이번 기회(보수혁신위 활동)에 공천개혁 논의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공천 자체가 국민들 뜻을 따르는 공천이 돼야지 당 지도부와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는 공천이 돼선 안됩니다. 결국 정당정치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려면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공천 개혁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은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대통령 단임제 5년을 보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년 정도밖에 안됩니다. 5년 단임제가 대통령이 일할 수 없는 형태라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는데, 이제 큰 틀에서 여야 합의를 이뤄 논의해 볼 때가 됐다는 생각입니다.”
◆서울시 당 위원장 나경원, 서울시와의 ‘가교 역할’ 자처
나 의원은 지난 9월 서울시 당 위원장이란 중책도 맡게 됐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석패한 이후 돌아온 서울시 정치무대란 점에서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 의원에게 서울시는 동작을과 더불어 한층 더 넓게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큰 틀에서의 또 다른 지역구다. 그런 점에서 그는 어쩌면 피하고 싶었을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만남도 먼저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박 시장과 나 의원은 선거 이후 3년 만에 지난 1일 서울시청에서 전격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둘은 서울시와 새누리당 서울시당 당협위원장 간 협의체 구성과 서울시의 발전 방향에 대해 1시간 넘게 환담을 나눴다. 나 의원이 정례적인 당정협의체를 제안했고, 박 시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오는 24일 서울시-새누리당-새누리당 서울시당 당협 등이 참여하는 당정협의체 첫 회의를 갖는다.
“서울시는 워낙 현안이 많은 터라, 서울시당이 중앙정부와 서울시, 국회와 서울시 간의 가교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향후 서울시당과 서울시가 협의를 잘해서 코워크(co-work)를 잘 하면 좋은 합의 모델을 만들 것이니 이것도 또 다른 소통의 정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경원 의원의 자켓 왼쪽에는 국회의원 금배지 대신 ‘슈퍼블루(Super Blue) 캠페인’을 상징하는 푸른색 운동화끈 배지가 있었다. 푸른색은 희망을, 운동화 끈은 스스로 신발 끈을 묶고 일어나겠다는 장애인의 자립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회장인 나 의원은 “지난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로 장애인 인식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면서 “국회에서 슈퍼블루 캠페인을 알리려는 홍보효과와 더불어 장애인과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라는 것을 가슴에 담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3년 간의 정치 공백을 거치고 다시 여의도 정치권에 돌아온 나경원 의원은 이제 더이 상 ‘얼짱 정치인’‘여의도 김태희’가 아니었다. 어느새 새치가 눈에 띄게 보이고 눈가 주름도 제법 깊었다. 그만큼 나 의원의 정치인생도 고개 숙인 벼처럼 제대로 익어가는 것이리라. “그 어느 때보다 터프한 선거를 거치고 집권여당의 책임있는 정치인이 되기 위한 소프트 랜딩(연착륙) 시간이었다”는 지난 100일을 거치고 난, 나 의원의 얼굴에서 이전보다 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