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엔저' 환율전쟁 재점화…쓸 카드없는 한은은 괴롭다

2014-11-04 16:34

4일 100엔 당 원화 환율은 940원대로 떨어졌다. [자료=한국은행 제공 ]


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 소강 상태를 보이던 글로벌 환율전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양적완화 종료에 돌입한 미국과 추가 양적완화를 지속하는 일본의 엇갈린 통화정책에 원화는 샌드위치 신세다.

원·달러 환율은 오르는 반면 원·엔 환율은 자꾸 떨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저성장으로 한국경제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강달러는 금융시장을 흔들고 엔저는 일본과의 수출경합도를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강달러·엔저 현상이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4일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있는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 원화는 달러와 엔화 사이에 낀 채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달러 대비 원화값 약세가 지속될 것이고, 원·엔 환율 역시 920원 안팎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는 시장에서 즉각 반영됐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070원 대로 복귀하긴 했지만 7개월 만에 1080원으로 상승 개장했고, 코스피 지수는 이틀 연속 하락하며 1930선으로 주저앉았다. 엔저 우려로 국내 대형 수출주들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통상 엔저가 심화되면 수출에 주력하는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쪼그라든다. 일본에 직접 수출하는 기업은 수익성 저하로, 글로벌시장에서 뛰는 기업은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원·엔 환율이 100엔당 950원대가 되면 수출이 4.2% 줄고, 900원까지 내려가면 8.8%나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외환당국의 경계감도 커졌다. 한국은행은 통화금융대책반회의를 열고 엔저 심화가 수출 등 실물경제 및 금융시스템 안정에 미칠 영향을 주의깊게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니터링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등의 리스크 때문에 일본처럼 돈을 더 풀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외환시장 개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비교해 간접 계산하기 때문에 원·달러 시장을 통해 속도조절은 하겠지만, 직접적인 개입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엔저의 공포에 대응하는 뾰족한 수단이 없는 현재 여건에서는 한은의 통화정책 완화에 대한 압박이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금통위가 연내에 1.75%까지 금리 인하에 나서는 것에 신중할 테지만 시장의 기대심리를 감안하면 연내 1.75%를 100% 반영할 수 있는 여지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가 엔저에 대한 대응책은 될 수 있겠지만 달러 강세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당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널뛰는 환율에 기준금리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엇갈린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며 "현 시점에서는 남은 금리인하 여력을 소진하기보다 향후 시장불안 고조 시의 대응수단으로 남겨두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장도 "내수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금리 인하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역시 원·엔 환율에 금리로 대응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제금융시장의 동향이나 그 나라의 자본유출입 등 환율 이외에 변수가 많다"면서 "환율에 금리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