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리뷰] '인터스텔라', '인셉션'은 연습이었다

2014-11-04 11:12
169분, 길다고 포기하기엔 아까운 '명품 재미'

매튜 맥커너히/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앞다퉈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 무엇을 볼까 고르는 일에는 개인의 취향과 작품의 특성이 관여한다. '인터스텔라'는 감독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인셉션>을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으로, 배우를 잣대로 삼는 이에게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보다 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매튜 맥커너히와 젊은 여배우로서 흔치 않은 깊이감을 지닌 앤 해서웨이라는 스타로, 소재와 장르를 눈여겨보는 관객에게는 인류 멸망의 대안과 시·공간의 상대성을 우주로 확장시킨 SF 블록버스터를 내세워 눈길을 붙든다.

뿐만이 아니다. 상대성이론, 블랙홀과 중력의 관계, 웜홀을 통한 시간단축·공간이동의 우주여행 등 과학적 이론을 영화에 접목했지만 인간의 뇌 사용 능력이 100%까지 확장됐을 때 벌어질 일을 그린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루시>만큼 어렵지 않다. <루시>에 비하면 <인터스텔라>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난 뒤에 만나는 중급 난이도 정도랄까. 소리도 산소도 없는 우주의 모습을 영화 내내 보여 주지만 우주망원경 고치려다 인공위성에 홀로 남게 된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의 우주유영기 <그래비티>처럼 다소 지루하지도 않다. 밋밋한 스토리에도 우주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그래비티>는 <인터스텔라>에 오르는 첫 번째 계단이었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하물며 놀란 감독의 전작이었던 <인셉션>, 현실과 꿈속을 연결시켜 우리의 굳은 머리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기는 했지만 새로이 구축한 영화 내 시간과 공간 개념이 내적 마찰을 빚으며 보는 이에게 혼동을 주기도 했던 '사랑스러운 실수'를, 이번에는 천재 물리학자 킵 손을 제작총괄로 영입해 완벽하게 만회했다. <인셉션>보다 훨씬 복잡한 시간과 공간의 5차원 세상, 지구와 우주 시간의 상대적 흐름, 시간여행의 개념들을 깔끔하게 시각적으로, 또 이치에 닿게 영화적으로 구성해 냈다. <인셉션>은 <인터스텔라>를 위한 연습이었다.

<루시>보다 쉬운 배경지식 설명, <그래비티>보다 쫀득한 전개, <인셉션>보다 영민한 시공 설계로도 모자라 <인터스텔라>는 세 작품보다 가장 선명하게 주제의식을 우리 가슴에 심는다. 모든 문명과 기술이 사라지고 먹고 사는 문제, 생존만이 유일한 인류의 목표가 된 가까운 미래. 역설적이게도 내일의 희망은 막대한 비용을 이유로 들어 지구인들이 스스로 폐기한 항공우주학에서 싹을 틔운다. 세상을 뒤덮는 모래바람에 숨쉬기조차 힘들고 한 줌의 식량을 재배하기 힘든 지구를 뒤로하고 새로운 별을 찾아나서는 우주비행선 조종사 쿠퍼(매튜 맥커너히)와 우주과학자 아멜리아(앤 해서웨이) 일행. 인류가 정착할 행성인가를 판단하는 그들을 결국 '신천지'로 이끄는 것은 블랙홀 방정식도 아니고 최고의 두뇌도 아니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것이 무엇인가에서 영화의 주제가 드러나는데, 가장 익숙하고 흔한 듯하지만 다소 큰 충격과 반전의 짠맛을 안긴다. 이야기 얼개부터 영상, 우주선 세트부터 작은 소품 하나 제작까지 어느 것 하나 가벼이 넘기지 않은 놀란 감독의 용의주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명연기, 이를 뒷받침한 실력파 스태프의 바지런한 노력이 수긍할 만한 감동 속에서 주제와 만나게 한다.

<인터스텔라>가 관객에 의해 선택될 가능성을 높이는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했지만, 가장 강력한 것은 남우주연 매튜 맥커너히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속 쿠퍼의 아들과 딸이 된 듯, 그의 다감한 눈과 나긋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믿고 따라가면 <인터스텔라>의 169분은 유연하고 흥미진진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맥커너히가 연기한 쿠퍼는 미래인류가 손쉽게 포기한 역사적 유물이자 모험정신 그 자체다. 먹고 사는 게 절박해서 생존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도리어 중요한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쿠퍼는 미래현실 부적응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기술이 중요했던 시대에 태어난 과거형 인물 엔지니어, 그러나 관용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쿠퍼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다. 어쩐지 '그랜토리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지막 보이스카웃'의 브루스 윌리스가 연상되는 쿠퍼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보이스카웃 정신으로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건다. 어린 딸 머피(맥켄지 포이)와의 남다른 유대감을 인류의 내일을 향한 희망으로 승화시켜 낸다. 맥커너히는 이러한 쿠퍼의 다면적 캐릭터와 다층적 감정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관객을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라는 영화 곳곳에  위치한 수많은 이야기 '항성 사이로' 초대하고 충돌없이 유영하게 하는 것은 바로 맥커너히이다. 매튜 맥커너히는 세계 관객의 눈과 마음을 싣고 우주로 떠나는 <인터스텔라> 호의 조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