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TV] '미생'을 욕한 자, 후회하고 있나
2014-10-28 10:02
'미생'을 향한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예상외'라고 표현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2013년 5월 '미생'을 미리 보게 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 '미생 프리퀄'에 쏟아지는 혹평들. '미생 프리퀄'을 본 대중은 '미생'의 실패를 예상했다.
"아이돌이란 계륵에 눈이 멀어버린 미생"(laex****), "100% 망작 나온다에 한 표"(woog****), "인기 웹툰이라고 성공하지는 않는다"(dr12****)와 같은 쓴소리는 기본이었다. 급기야는 원작의 우수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미생' 안보기 운동'까지 벌어졌다. 웹툰 '미생'을 향한 대중의 애정이 그 정도였다.
제작진의 절치부심 때문이었을까. 프로 바둑기사의 꿈도 이루지 못한 채로, 고졸이라는 스펙으로 덩그러니 세상으로 던져지게 된 장그래의 이야기를 그리며 사람들의 우려 속에 출발한 '미생'은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1.6%(닐슨코리아 기준·이하 동일)의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방송 4회 만에 3.5%로 껑충 뛰어 올랐다. 재방송이나 다시보기 서비스의 시청까지 합하면 그 파장은 더욱 크다.
시청자는 고졸 검정고시가 학벌의 전부인 장그래(임시완)의 회사 생활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화려한 스펙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기와 질투가 만연한 우리네 회사 생활에서 장그래가 살아남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미생'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인 셈이다.
나의 사회생활을 꼭 닮은 '미생'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와 한숨과 눈물, 그리고 용기까지. 회오리치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어제와 그저께, 1년 전과 10년 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은 '미생'을 보는 재미와 이유다.
원작 속 주인공과 드라마 속 주인공의 높은 싱크로율도 '미생'을 열광케 하는 요소다. 임시완은 품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은 채 너털너털 걷는, 자신감 하나 없는 축 처진 장그래를 완벽 복제했고, 누가 봐도 회사 생활에 찌든 직장인 오과장 역은 이성민에 의해 재탄생됐다.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주변인물들(강소라, 강하늘, 변요환) 역시 원작 속 캐릭터를 빼다 박았다. '과연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미생'의 재창조에 시청자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멋진 드라마를 만나서 행복합니다"(sesb****), "미친듯이 생경한 이 세상 속에 버려진 장그래와 나"(f_m_****),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shf****) 등의 반응이 처음과 달라진 위상을 방증한다.
이로써 원작의 팬도 좋아하고 원작을 접하지 못한 사람도 좋아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던 김원석 PD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됐다. 어떤 한두사람이 느낄 수 있는 캐릭터의 느낌보다는 원작자가 애초에 의도했던 느낌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원작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김 PD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미생.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은 아니라서 다시 살아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이다. 다시 말해 '미생'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살아있지 않은 사람을 뜻하면서 살아날 수 있는,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을 내포하는 작품이다.
완성도 높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잘 만들어진 드라마 '미생'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앞으로 그려내야 할 직장생활 이야기도 많을게다. 더욱 지켜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건, '미생'을 욕한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