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왔다 장보리' 오연서, 제2의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2014-10-24 08:11

[사진제공=웰메이드예당]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지난 12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극본 김순옥·연출 백호민, 이하 '왔다 장보리')는 출연 배우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2001년 데뷔 후 '착한 며느리' 이미지가 강했던 이유리(연민정 역)는 '국민 악녀'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10년째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조·단역을 오가던 하던 성혁(문지상 역)은 당당히 KBS1 일일드라마 주연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타이틀롤에 대한 부담감과 주변의 기대감을 이겨낸 오연서(장보리 역)는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지난 22일 서울 재동 카페에서 만난 오연서는 한껏 밝은 얼굴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에도 밀린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피곤할 법도 하건만 "요즘은 시청률 30% 나오기도 힘들잖아요. 40%를 못 넘겨서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도 감사드려요"라고 웃어 보였다. '왔다 장보리'는 지난달 21일 자체 최고 시청률 37.3%를 기록했고, 35.0%로 종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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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다 장보리', 내가 가장 고군분투한 작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왔다 장보리' 이야기가 나왔다. "주말만 기다린다"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일드라마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으로 결방했을 때는 항의하는 시청자로 게시판이 뜨거웠다. 남녀노소에게 큰 사랑을 받은 '국민 드라마'였다.

"결방했을 때 어머니가 친구분 전화까지 받으셨더라고요, 왜 안 하느냐고요. 식당에만 가도 '드라마를 안 하면 무슨 낙으로 사냐'고 말씀하시고…, '드라마가 가진 힘이 크구나' 싶었어요. '왔다 장보리'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오연서는 '왔다 장보리'를 '고군분투기'라고 정의했다. 52부작 드라마에서 타이틀롤은 그 자체로도 큰 부담이었다. 더욱이 어려서 기억을 잃고 괄괄한 시골 아가씨로 자라, 낳지도 않은 딸을 애지중지 키우며 당당히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파란만장한 인물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작품이 끝나니 아쉬운 부분이 자꾸 떠올라요"라고 토로했지만 오연서의 성장을 또렷이 목격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제 배로 품지 않은 딸 비단(김지영)을 두고 겪는 가슴앓이는 시청자의 눈물을 쏙 뺐다.

"엄마를 떠올리며 모성애 연기를 했다"는 오연서는 "여자라면 누구나 모성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지영 양이 워낙 연기를 잘해서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정말 열심히 했고 힘들었어요, 그만큼 큰 사랑도 받아서 기쁘고요. 저에게는 연기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운 적도 있을 만큼 배우로서 욕심이 많이 생겼어요. 조금씩 제 자신이 성장하는 게 느껴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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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보리 vs 연민정

'보리보리' 장보리만큼 사랑을 받은 캐릭터가 연민정이다. 성공에 눈이 멀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연민정은 후반부로 가면서 시청자의 지지를 얻었다. 주인공의 관심을 나눠 갖는 게 속상할 법도 하지만 "이유리 선배 덕분에 시청률이 크게 올랐다"고 개의치 않았다. "장보리와 연민정은 전혀 다른 캐릭터"라며 "이유리는 연민정에 맞게, 나는 보리에 맞게 연기했을 뿐"이라는 여유도 보였다.

"악역이 악행을 저지를수록 시청률은 상승하고, 시청자는 재미있어 해요. 댓글을 보면 '왔다 장보리'가 아닌 '왔다 연민정'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더라고요. 가끔 섭섭할 때도 있지만 현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잘 되는 드라마는 '온도'부터 다르죠. 촬영장에 있는 유리 언니를 향해 지나가던 버스 승객 누군가가 욕을 퍼붓기도 하고요, 하하. 모두 좋아해 주시는 작품을 하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고 즐겁게 촬영할 수 있는 힘이 됐어요."

오연서는 이유리의 장점으로 '신인의 자세'를 꼽았다. "캐릭터에 몰입하고, 훌륭히 역할을 소화해 내요. 그런데 그 안에 신인 같은 모습이 있더라고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준비하고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는 모습, 배우고 싶어요. 평상시 모습은 완전히 달라요. 착하고 엉뚱한 면이 있어요. 악마처럼 연민정 연기를 하는 게 신기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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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멤버에서 '보리보리 장보리'가 되기까지

2002년 그룹 'Luv'로 데뷔한 오연서는 성장드라마 '반올림#1'(2003)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향했다. 함께한 배우 고아라, 유아인 등이 '반올림'을 발판 삼아 탄탄한 배우의 길을 걸은 반면 오연서는 무명 배우로 지내야 했다.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쳤지만 강인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오연서 본인은 그 기간을 '침체기'가 아니라 '성장기'였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무명의 10년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어요. 20대는 누구에게나 아픈 시기 아닌가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그 다음에는 회사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잖아요. 저도 그저, 그런 과정이었던 거죠. 힘든 시간 동안에는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재능은 있는 건가'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덜 유명했기 때문에 대학교 MT도 가고, 친구들과 술도 밤새 마실 수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제가 잘 됐다면 그런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했죠, 그런 게 정말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건데 말이에요."

부단히 '소중한 것'을 지켜낸 오연서는 2012년 KBS2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말숙이를 열연, '국민 시누이'로 등극했다. Luv로 데뷔한 지 꼭 10년 째였다. 이후 '오자룡이 간다'(2012), '메디컬 탑팀'(2013)에서도 호연을 펼쳤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며 '왔다 장보리'를 통해 '오연서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왔다 장보리'를 하면서 칭찬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어른 분들을 만나면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보려고 주방에서 나와 손을 잡아 주시기도 하고요. 그저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늘 다짐합니다."

오연서는 신중하게 차기작을 골라 대중 앞에 다시 설 생각이다. 톡톡 튀는 역할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만큼 "밝은 캐릭터를 맡고 싶다"고 밝혔다. "무리하게 변신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잘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시청자께 제 건강한 에너지를 드리고 싶거든요"라고 말하는 오연서의 목소리에는 주위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부담감을 특유의 유쾌한 웃음으로 지우고, 연기력으로 기대감을 키운 오연서의 연기 인생 2막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