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세금회피용 M&A 강력 규제에 관련주 '된서리'

2014-09-24 10:46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미국 정부가 조세회피 목적의 기업 간 인수·합병(M&A)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현재 대형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 관련 기업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가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의 '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 규제 선언에 제약주를 필두로 한 관련 기업주가 이날 증시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 재무부는 전날 인수·합병을 통해 본사 소재지를 외국으로 옮겨 법인세를 회피하는 이른바 ‘세금 바꿔치기’를 통한 조세회피 및 세금혜택을 방지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잭 루 재무장관은 이번 조치와 관련해 "미국 정부의 과세를 피하려는 '세금 바꿔치기' 기업들의 혜택을 현저히 감소시킬 것"이라며 “기업들이 세금 바꿔치기를 경제성이 없다고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시 신설되는 법인에서 외국 지분율이 20% 이상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강화했고, 해외의 소규모 기업이 더 큰 미국 기업을 인수하기 어렵게 규정했다.

또 미국 기업이 인수·합병에 앞서 특별 배당을 통해 회사 규모를 줄이는 행위를 막고, 미국의 모기업이 세금 회피를 위해 외국 자회사에 대출 형식으로 발생한 수익을 송금할 경우에도 세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일부 대기업이 법적인 구멍을 이용해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며 이는 책임 있게 행동하는 기업을 약화시키고 중산층에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루 장관이 이 같은 경향을 바꾸기 위해 추가적 조치를 마련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규정은 기존에 성사된 인수·합병 건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발표 시점인 이날 이후를 기점으로 체결된 인수·합병 건에만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같은 규정을 마련함에 따라 향후 대기업들의 M&A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미 정부가 이 같이 결정한 이후, 캐나다 커피체인점 팀 홀튼 인수로 세금회피 논란의 중심에 섰던 버거킹월드와이드의 주가는 이날 뉴욕증시에서 2% 가량 하락했다.

앞서 미국의 외식업체 버거킹은 팀 홀튼을 인수하고 새 법인의 본사를 캐나다로 이전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 기업들의 '세금 바꿔치기' 행태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버거킹은 일단 기존 M&A를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스캇 보니코프스키 팀호튼 대변인은 “거래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번 M&A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것으로 세금 혜택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라 대형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제약업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닐 바 DP&W 세제 부문 공동 대표는 “합병 파트너들의 재정적 계산법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로부터 인수제의를 받아왔던 영국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주가는 이날 무려 4.74% 급락했다.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 영국 샤이어와 미국 제약사 애브비 주가 또한 각각 2.5%, 1.8% 하락했다.

미국 2대 의료장비업체 메드트로닉의 주가는 3% 가까이 하락했다. 메드트로닉은 429억 달러에 아일랜드의 경쟁업체 코비디엔의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 또 미국 경쟁사인 밀란을 인수해 네덜란드에 새 법인을 세우려던 미국 제약사 애벗래버러토리스 주가 역시 1.7% 떨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로 조세회피 목적의 M&A가 일시적으로 줄 수는 있겠지만 M&A 시장에 큰 변화를 주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번 규제안으로 조세 회피의 경제적 매력 일부가 사라질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재무부가 조세회피를 막을 수 있는 어느정도의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조세 회피를 완전히 없애기엔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