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눈치 보고, 직원 견제 받는” 혼혈 경영인
2014-09-14 06:0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직계 가족이지만 성(姓)이 다른 오너 사위 경영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평탄치 않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능력으로 승승장구 해온 전문 경영인들은 오너의 총애라도 받지만, 오너의 사위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반 오너, 반 전문 경영인’ 또는 ‘혼혈 경영인’이라는 별칭이 붙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보람된 삶인지 안쓰러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오너 형제와 전문 경영인의 경계를 짓는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버티고 있는 오너가 사위는 어느 한쪽으로 떨어져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스스로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따라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너가 사위들의 경영 성과는 의외로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겉으로 내세울 수 없다. 오너가 형제들이 본다면 내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며, 일반 직원들이나 임원들은 장인의 지원 덕분에 이룬 것일 뿐이라며 외면 당한다.
이 기간 동안 현대차와 기아차의 비약적인 성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까지 이어진 건설경기 호황 등 제품 수요 급증, 그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한 설비 투자를 통한 생산 확대 등이 결합해 이뤄낸 성과다. 적어도 현대하이스코 내에서는 김원갑 부회장과 신 전 사장이 이뤄놓은 경영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현대차 그룹 전체로 놓고 봤을 때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실제로 그는 그룹 내에서 적지 않은 견제를 받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신 전 사장이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선은 긍정적이지 만은 않았다는 후문이다. 신 전 사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건 간에 그룹 임원들 사이에서는 당진 일관제철소 착공 이후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철강사업 주도권을 잡기 위한 물밑 갈등 또는 경쟁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저러한 사연을 뒤로 한 채 신 전 사장은 현대차와의 인연을 끝맺음 했다. 신 전 사장 개인적으로도 CEO로서의 큰 그림을 직접 그려보지 못한 아쉬움이 클 것이고, 현대차그룹으로서도 장기간 공을 들여 키운 최고경영자를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데 대한 유·무형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결단을 주목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재동 현대차 본사 집무실과 한남동 자택에 보관해 두고 시간이 날 때면 읽어보곤 하는 인사파일에 신 전 사장이 올라 있을 것인지 말이다. 비록 가족의 연이 끊어지면서 사위였던 신 전 사장의 사직서를 처리했다. 하지만 그를 유능한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한다면, 필요로 할 경우 중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 않다.
한편, 신 전 사장의 퇴진으로, 현대하이스코에 일고 있는 여진은 당분간 지속 될 듯하다. 일관제철소 사업 개시를 전후로 시장에서는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회사간 합병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나 뚜껑을 열고 보니 냉연사업 양수도로 마무리 됐다. 배경이 어땠건 간에 신체의 절반을 넘는 생살을 도려낸 현대하이스코가 존속 법인을 남아있던 이유는 신 전 사장 때문이었다. 그랬던 신 전 사장이 회사를 떠났으니,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현대하이스코가 굳이 존재해야 할 명분이 사라졌다.
냉연사업 부문을 가져간 현대제철에서는 곧이어 현대하이스코의 몫으로 남겨둔 해외 스틸 서비스 사업과 차량 경량화 사업까지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 강판을 전문으로 하는 상·하공정 통합 일관제철사를 지향하려는 현대제철로서는 당연한 욕심이다.
극단적인 전망을 제기한다면 현대차그룹의 철강 계열 3사 가운데 현대하이스코를 현대제철에 합병시키고, 스테인리스스틸 시장의 불황으로 고전중인 현대비앤지스틸에게 현대하이스코의 영위사업을 넘겨 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말을 현대하이스코 임직원들은 현재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현대하이스코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눈여겨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