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선개입 국정원 댓글' 원세훈 집행유예…"선거법 무죄·국정원법 유죄"
2014-09-11 16:07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이날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국정원이 사이버 심리전을 통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정치 활동을 했다며 찬반클릭 1214회, 인터넷 게시글 2125회, 트위터 계정 175개를 이용한 11만3600여개의 트위트글 활동을 국정원법 위반으로 봤다. 그러나 특정 후보자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목적성이나 능동성, 계획성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공직선거법위반은 무죄로 판단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피고인들의 지시로 매일 시달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정치 관여 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지만 선거법상 선거 개입 혐의로까지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려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라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그런 지시는 없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통상적인 선거운동이라면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은 오히려 대선을 앞둔 11월에 감소했다"며 "이를 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 전 원장 등이) 특정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직접 개입한 것은 어떤 명분을 들더라도 허용될 수 없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것으로 죄책이 무겁다"고 밝혔다.
특히 "국정원의 수장으로서 정치관여 활동을 누구보다 방지해야 할 위치에서 국책사업 홍보를 지시하고 정부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정당은 비방하도록 지시한 것은 자신의 책무를 저버린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원세훈 전 원장이 적극적으로 범행을 인식하고 지시하지는 않았으며, 국정원장으로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업무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한 부분도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북한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이 되고, 특히 사이버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심리전단의 주된 목적이 이런 흑색선전에 대응하는 데 있는 점을 고려하면 동기에 참작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2월부터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동조하는 정책이나 의견을 가진 단체를 모두 종북세력으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주요 정책과 관련한 여론전을 지시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위반)로 지난해 6월 재판에 넘겨졌다.
원세훈 전 원장은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각종 선거과정에 심리정보국 직원들을 동원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댓글 등을 다는 수법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친 혐의(공직선거법상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도 받았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269개의 트위터 기초 계정을 이용해 78만건이 넘는 트위트글을 올리는 방법으로 정치 및 선거에 관여한 혐의를 추가했다.
당초 기소유예에 그쳤던 이 전 차장과 민 전 국장도 법원이 민주당 측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원 전 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지난 7월 결심공판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원세훈 전 원장은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지 한달 뒤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수감된 상태에서 두 가지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아왔다.
개인비리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았던 원 전 원장은 지난 9일 형기만료로 출소했고, 이날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재수감될 처지는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