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이 이야기 하려는 것은 무엇?

2014-08-24 06:30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2011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 45주년 행사에서 회한에 잠긴 듯 두 눈을 감고 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news.co.kr]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5년 만에 입을 연 김우중 전 회장의 ‘폭풍 발언’이 한국 경제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제목으로,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 교수와 대화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책에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는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정책을 담당했던 관료들에 의한 ‘기획해체’ 라고 주장했다.

최고 권력자가 아닌 ‘경제 관료’ 때문이었다는 그의 주장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공무원 조직이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기업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기자와 만난 대우그룹 전 임원은 “그들(경제 관료)이 바뀌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대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김 전 회장이 책을 낸 이유는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것과 더불어 관료들의 의식 개혁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우그룹은 ‘성장’을 내건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던 1967년 탄생해 성장한 ‘아이콘’이었다. 맨손으로 시작해 5년 만에 국내 최초로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을 만큼 빠르게 사세를 키워낸 그의 경영수완을 높이 산 박 대통령은 김 전 회장을 “우중아”라고 부를 만큼 친근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1999년은 ‘분배’에 역점을 둔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다. 김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정적 관계였다. 세간에서는 박 대통령의 그늘 속에서 성장한 대우를 김 대통령이 싫어해 제거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은 김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자신에게 “경제 대통령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만큼 신뢰를 했다고 한다. 적어도 정치적 헤게모니와 상관없이 최고 권력자는 대우와 김 전 회장을 믿었다. 그런데 한쪽 아래에서는 성장했고, 다른 쪽 아래에서는 몰락이라는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관료들이라고 대우인들은 믿고 있다.

대우 출신 임원도 이 점을 장시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들을 적극 활용했다. 정부 관료들도 박 대통령과 같은 시각에서 기업을 바라봤다. 그래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기업들을 강제로 매수하게 했다. 우리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기계와 조선업을 맡게 된 이유다. 억지로 맡았지만 김 전 회장은 두 사업을 모두 성공적으로 키워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김 대통령 집권 시기의 경제 관료들은 김 전 회장을 곱지 않게 바라봤다. 박 대통령이 떠안긴 기업들을 놓고 문어발 경영을 했다고 멸시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김 대통령은 김 전 회장의 말을 더 많이 들으려고 했고, 심지어 김 전 회장의 말대로 정책을 만들려고 했다. 이는 관료들이 대우를 없애려고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끊임없이 김 대통령을 설득했고, 대우그룹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손을 떼지 않으면 경제사범으로 구속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도 책 속에서 “청와대 쪽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대우에 대해 나쁜 보고가 올라갔다고 하더라. 나도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해 DJ에게 ‘앞장서서 얘기하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하다가(대통령을 도와 발언하다가) 우리 대우가 잘못되면 (내가)망신당하겠다. 제발 (나를)부르지 마시고 조용히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당시의 위기감을 전했다.

대우인들은 이제부터 진실 바로잡기에 나선다는 각오다. 대우 출신 임원은 “김 전 회장이 15년간의 침묵을 깬 이유는 이제부터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잘못한 것은 죄를 받겠다는 건 그를 비롯한 전 대우인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진실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많은 시련이 오겠지만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