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중견미술작가 지원과 지역문화 갱생의 중요성
2014-07-14 11:05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평론가)
청중의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 미술가들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들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미술가에게 수입은 작품판매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현실은 냉혹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연명한다는 죄로 막노동부터 대리운전까지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예도 적지 않다.
특히 자녀가 학생일 경우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초ㆍ중ㆍ고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전체 평균 23만9000원, 대도심 지역은 40만~50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두 자녀일 경우 매달 약 100만원이 필요한 셈이다. 이뿐인가, 지난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대졸 인구가 300만 명을 넘었단다. 결국 한창 일해야 할 ‘30대 중반 이하의 고학력 청년 백수’가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격이다.
부모 의존적인 캥거루족 미혼 자녀들이 늘면서 해외에서도 ‘패러사이트 싱글’ 혹은 ‘키퍼스’라는 신조어들이 생길 정도다. 우리나라도 노후를 위한 연금까지 자식에게 퍼줘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장년의 미술가들에게 연금얘기는 사치일 뿐이다. 당장 사교육비부터 문제다. 가장 왕성한 작가의 경우 1년에 한 번의 개인전을 하는데 보통 15~20점의 작품을 내놓는다. 작품가격 평균 점당 가격은 300만원 전후이다.
1~2년을 준비한 개인전이지만, 요즘 경기를 감안할 때 10점 팔리기도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볼 때 진행경비를 제외한 전시 수익금 전액은 고스란히 자녀의 사교육비나 학자금으로 써도 부족한 셈이다. 이런 실정의 미술가가 90%가 넘을 것이다. 더더욱 최신의 정보 흐름에서 소외됐거나 단절된 지역 작가의 경우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개인적인 판로가 막힌 미술가들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은 공공 미술관이나 기관의 작품구입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역을 관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작품구입비는 40억원 미만이다. 이 돈으로 전국의 작고작가나 원로작가, 중진, 유망작가는 물론 간혹 해외미술가의 작품까지 구매해야 한다. 어느 지역의 미술관은 한해 작품구입비가 ‘0원’인 예도 있다. 이렇다보니 지역의 미술가가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 해도 ‘제 값’에 작품을 구입해주기 힘든 실정이다. 시장가격의 50%선에서도 다시 몇 십만 원을 갖고 실랑이를 벌이는 예도 다반사다.
중진 미술가들은 한 가정의 가장을 떠나 우리나라 미술문화를 지탱하는 허리와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풍부한 경험과 경력 그리고 작가생활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예술품의 보존가치 측면에서도 더 오랜 세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다. 길다는 의미 속엔 작가적 일생이 녹아들었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우린 지금 미래 문화자산의 역군들을 어찌 대접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만 한다.
경쟁력 있는 문화는 제대로 된 정체성이 담겨야 한다.제 빛깔을 찾은 지역문화들이 자생ㆍ자립할 때 우리나라 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 그 주역은 당연히 지역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중견작가들이다. 전국의 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분산 정책에 맞게, 소외된 지역문화가 갱생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