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경영 김준기 회장, 또 다른 ‘카드’ 꺼내나

2014-07-03 16:2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유동성 위기에서 한숨 돌린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 2009년 전격적인 사재출연 때와 같은 새로운 ‘카드’로 채권단의 공세를 정면 돌파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의 채권단과 동부그룹간 구조조정 갈등이 지난 2009년 상황과 유사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동부그룹은 알짜 계열사인 동부메탈을 매각하기로 하고 채권단과 협의를 진행했다. 이 때 김 회장은 단 한 가지,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매각 금액과 경영권 보장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채권단은 동부그룹이 납득하기 힘은 터무니없는 낮은 가격을 고집했고, 결국 김 회장은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한 뒤 사재 3500억원을 털어 동부메탈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뤄냈다.

앞서 석 달여 전인 그해 7월 1일 충남 당진 동부제철 전기로 가동식에서 김 회장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쏟아낸 김 회장 발언의 요지는 '은행원과 공무원 등 기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기업을 다 아는 것 마냥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던져, 기업가의 생명인 도전정신을 위축시키고 있다. 기업은 기업인이 해야 한다'는 내용 이었다. 사실상 채권단의 압박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김 회장은 간담회 후 사재출연을 전격 발표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채권단에 대해 김 회장은 여전히 불신하고 있는 듯하다. 산업은행이 주도한 수의계약 방식의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의 패키지 매각이 좌절됐을 때 동부그룹 내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산은이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하면서 패키지 매각 가격이 ‘헐값’ 수준인 5000억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그룹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까닭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조만간 동부당진발전과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 절차를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동부당진발전의 경우 여러 회사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로운 매각 절차에서도 적절한 가치를 제시하는 기업이 없을 경우 그는 동부메탈 때와 마찬가지로 사재출연을 통한 직접 인수라는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의 오너 일가 금융계열사 지분 등 사재출연 요구에 대해 김 회장측이 동부메탈 지분 인수 등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동부인베스트먼트에 출연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예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산은도 김 회장측의 요구를 무시하고 오너 일가의 직접적인 사재출연을 고집하는 이유도 2009년과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당시 산은은 “대주단과의 약정을 지킬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문제되지 않는다”며 동부그룹측의 발표에 동의했지만 이같은 분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사실상 백기를 든 격이 되면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산은내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동부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김 회장과 산은의 머리싸움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의를 통한 상생의 실마리를 도출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