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2014-06-21 21:45

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조선 태조 때 좌의정 조준이 임금에게 아뢴다. "전하, 병이 깊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백성들과 미아들을 구휼할 방도를 찾아야 할 듯 하옵니다."

태조도 이에 공감하고 서민들을 위한 의료기관을 세우는데 이것이 지난 1397년 서울 종로구 계동에 세워진 '제생원'이다.

이 제생원은 70년이 지난 1466년에 '혜민서'라는 기구와 통합되면서 1882년까지 서민을 위한 진료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

드라마 '허준'으로도 잘 알려진 이 혜민서는 '은혜 혜, 백성 민'의 이름 그대로 백성을 위한 의료기관이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아프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진료를 받아 병을 고치고 다시 생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시설, 진료기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에 의해 운영될 수도 있고, 개인이 운영할 수도, 또 기관이나 단체도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구나가 쉽게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언론에 보도된 뉴스를 접하고는 깜짝 놀랐다. 어느 저소득층 남자 아이가 충치가 생겼는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염증이 심해지고 결국 사망했다는 보도였다.

'아니 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니.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는 말인가?' 병원 문턱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살다가 와서 그랬는지 기사 내용이 믿겨지지 않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돈이 없어도 일단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무지 때문이었다.

웬만큼 아픈 것은 참거나 동네 마트에 가서 적당한 약을 사서 먹는 게 저소득층 국민들의 일상생활이었다. 병원비가 워낙 비싸다 보니 의사를 만나 진료받을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 저소득층 주민을 위한 진료시설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의 보건소와 비슷한 개념의 클리닉센터가 각 지자체마다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치료비가 비싸게 나와도 일부를 지원 받거나 할부로 조금씩 갚아 나가도록 하는 제도도 있다.

전국민 무상 의료지원 하면 생각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모든 국민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누구나 병원에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대ㆍ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를 만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약이 없어서다. 북한은 최근 들어 '고려약', 즉 한약의 효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난으로 의약품 부족이 장기화되자 이를 타개해 보자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한 마디로 병원에서 줄 약이 없으니 각자 알아서 산으로 들로 나가 약초를 캐 먹으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독초를 먹고 숨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시설에서 제대로 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제대로 된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이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아주 기본적으로 세워 놓아야 할 중요한 국가기반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도 그동안 최악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카이저 패밀리재단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지난 4월 건강보험 개혁법안, 일명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게 된 미국민이 800만 명이 넘었고, 이 가운데 450만 명은 이전에 의료보험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70%는 자신이 가입한 오바마케어 건강보험 상품에 '우수' 또는 '최우수'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또한 오바마케어 가입자 대부분은 주치의 진료나 병원 방문 때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오바마케어에 가입한 저소득층은 정부의 보조 혜택에도 불구하고 보험료를 납부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고 밝혔다.

모두가 만족하는 완벽한 제도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 안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그동안 병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이들이 의사를 만나고 처방전을 받아 병을 고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지만 그동안 많은 이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다.

얼마 전 병원에 갔다가 아는 지인을 만났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영주권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구두수선공으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적은 수입 때문에 가족이 아파도 병원 한번 못 갔었단다.

그런데 오바마케어가 생기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간단한 알러지 치료도 받지 못해 하루 하루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들의 모습은 의료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를 나라가 지켜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점점 병들어 갈 것이다. 물론 의료인들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시스템 마련, 제도 시행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