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안에 결정하라!” 대리운전기사에게서 배우는 CEO 경영학

2014-04-14 11:0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자가용을 보유한 이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대리운전 서비스를 이용해 봤을 것이다.

자유업이라 법적 규제도 없고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안 돼 정확한 수치는 집계되지 않고 있으나 전국적으로 대리운전 시장규모는 무려 4조 원대로 성장했으며, 7000여 개 대리운전 업체가 영업하고 있고, 8만~12만 명의 대리운전기사가 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운전만 잘하면 되는, 진입장벽이 낮은 시장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리운전 시장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실제로, 대리운전기사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도전정신’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생존법 속에는 경영학의 대가들이 강조하는 ‘혁신경영’과 ‘가치경영’, ‘고객경영’ 등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눈 감으면 변하는 빠른 시장
초창기 대리운전 사업은 유흥업소 등에 기사들이 소속돼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소극적인 서비스였다. 이후 전문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업체들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서비스 요청을 접수해 이를 소속 대리운전 기사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여기까지는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서비스 제공 결정권을 업체가 결정하는 ‘톱-다운 방식’ 양상을 보였고, 대리운전기사들은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업체가 난립하고, 대리운전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치킨 게임에 버금가는 가격인하 경쟁으로 업체 간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업체의 연락만을 기다리며 일거리를 찾은 대리운전기사들은 느린 대응시간 때문에 경쟁사에 빼앗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가운데 스마트폰 보급이 급증하면서 대리운전사들을 위한 전용 앱이 개발돼 보급됐다. 앱에서 뜨는 각종 콜 정보를 대리운전기사가 직접 선택하는 적극적 서비스로 전환됐다. ‘보텀-업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기존 시장이 IT기술과 만나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중요한 점은 저렴하면서 빠른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의 니즈와 일거리를 잡기 위한 대리운전기사의 절실함이 결합해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윈-윈하는 시장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출혈을 동반한 가격경쟁만 벌어졌다면, 대리운전사업은 소수의 선두 기업만 남고 나머지는 퇴출당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살아남을 기회가 보장된 형태로 바뀌면서 전체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CEO들이 기존 경영방식만 고집한다면 결국 쇠망의 길로 빠지게 된다. 변화의 조짐을 정확히 파악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면, 현재의 주력사업을 더욱 확대시키면서도 전체 시장의 성장도 도모할

대리운전기사가 스마트폰 앱에 올라오고 있는 콜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수 있다.

◆1초 안에 결정하고, 10분 내에 고객에게 제공하라
변화한 대리운전시장은 대리운전기사 스스로의 능력 향상을 요구한다. 차별화된 전략과 전술을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스마트폰 앱에는 수많은 콜 정보가 실시간으로 뜬다. 이들 콜 정보 가운데 지금 내가 위치한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콜 정보들을 검색하고 가장 적합한 요금을 제시하는 정보를 ‘잡는 게’ 대리운전기사들의 목표다.

중요한 것은 이 정보들을 모든 대리운전사들이 동일한 시간에 동시에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콜 정보들을 찾아 이를 분석한 뒤 잡을지 여부를 누가 먼저 ‘결정’하느냐에 따라 승패는 갈라진다. 통상 대리운전기사들은 검색 후 1초 안에 잡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살짝 늦어도 일거리를 경쟁자에게 빼앗긴다.

콜 정보를 잡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고객이 있는 장소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 뛰는 것은 기본이요, 안 될 것 같으면 택시라도 잡아야 한다. 도착까지 10분을 넘기면 안 된다. 그 시간을 넘으면 고객은 불만을 나타낼 것이며,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부를 것이 분명하다. 근처를 지나가던 대리운전기사가 일감을 낚아챌 수도 있다.

CEO라면 시장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기업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한 방안이 고객에게 가장 빨리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쟁사에 고객을 빼앗기게 된다.

◆잠재고객 발굴을 위해 주변을 늘 살핀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콜 정보도 끊임없이 살펴봐야 하지만 바로 자신이 위치한 주변에서 잠재고객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통상 대리운전기사가 업무시간 동안 걷는 거리는 10km 이상이라고 한다. 일거리를 잡지 못한다고 서 있지 않는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식당에서 나온 고객 중 서비스를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보이면 전화 연락을 하기 전에 먼저 다가가 “대리운전 필요하시냐”고 물어본다. 차 주변에서 요청한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찾아간다. 고객이 오케이 하면 곧바로 거래가 이뤄진다. 상도의적으로는 아닐 수 있지만 생존경쟁에서는 무의미하다. 야구의 도루처럼, 기회가 엿보이면 바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

영업은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업무다. CEO부터 영업을 위해 끊임없이 고객을 찾아가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직원들도 함께 움직인다. 고객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거래를 유도해 내는 기법도 익혀야 한다. 이 또한 잠깐의 머뭇거림이 없어야 한다.

◆구두는 반드시 윤이 나도록 닦는다
이제는 양복 정장, 또는 깔끔한 옷차림을 한 대리운전기사를 자주 만나게 된다. 대리운전기사와 고객 간의 관계는 ‘단골’이라는 특별함이 개입되지 않을 경우 대리운전 시작과 끝으로 마무리된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밤에 이용하는 관계로 고객이 대리운전기사를 두려워하거나 부담감, 거부감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단정한 옷차림, 외모는 대리운전기사 자신을 차별화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주머니에 목장갑을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구두를 닦는 이들도 있다. 흙먼지 묻은 구두를 본 고객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리운전을 하는 동안 술에 취한 고객이 깊은 잠에 들지 않도록 고객의 특성을 측정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밝힐 수 없는 고객의 고민상담을 즉석에서 해주는 것은 또 다른 영업 기술이다.

이러한 태도 하나하나가 대리운전기사의 친밀감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속한 대리운전 업체의 신뢰성을 높여 향후 고객이 지속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기업들은 자사에 대한 고객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 발굴에 역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모습을 해야 할지 CEO들은 고민해야 한다.

◆외로움을 극복하라
대리운전기사들이 일을 하는 시간대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초저녁부터 동트기 직전 새벽까지다. ‘남들이 놀 때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들은 실천한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 시간 내내 대리운전기사들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로움을 극복해야만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업 내에서 가장 외로운 이들이 CEO다. 많은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의 결정은 모두 혼자서 이뤄야 한다. 올바른 결정을 위해서는 CEO 역시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