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기자의 부동산 인더스토리]현대엔지니어링-엠코 합병에 관한 오해와 진실
2014-03-20 10:30
산업은행은 성공 스토리를 왜 함구해야 하는가?
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말이다. 두건장이는 얼마나 답답했으면 대밭에 홀로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을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만큼 속이 타는 일도 없다. 산업은행 안양지점이 요즘 그렇다. 10년 전 투자로 1000억원이 넘는 대박을 거두고도 그 사실을 입밖에 낼 수 없는 처지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간의 합병에 얽힌 일종의 오해 때문이다.
산업은행 안양지점은 2003년 현대엔지니어링 주식 30만주를 24억원에 매입했다.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을 주당 8000에 산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2001년 현대건설에서 분사된 직후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산업은행이 투자로 자본금을 189억원으로 늘렸다. 산업은행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7.42%로 현대건설(72.55%)과 우리사주조합(10.74%)에 이은 3대 주주다.
그러던 중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를 인수하는 식으로 두 회사의 합병이 진행되면서 매각 기회가 찾아왔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서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26일 합병 반대 의사를 현대엔지니어링에 전달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한 조치다.
그 과정에서 행사 금액이 도마위에 올랐다. 양사의 합병조건에 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금액이 1000억원을 넘을 경우 합병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합병 비용이 늘어 새로운 법인 출범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업은행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합병법인이 상장하거나 다른 합병 딜이 있을 때까지 매각 타이밍을 늦춰야 한다. 그렇다고 1200억원을 다 팔자니 만에 하나 합병이 무산될 경우 국책은행이 국가산업 발전을 저해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결정 시한은 지난 19일이었다. 다수의 취재원 취재 결과 산업은행은 행사 의사를 현대엔지니어링에 전달한 게 확실시 된다. 한 고위관계자는 “상업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투자 수익 실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물론 현대엔지니어링도 그에 대한 어떤 확인도 해주지 않고 있다. 행사 금액은 물론이다. 일각에선 합병 무산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1000억원 미만으로 행사금액을 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투자를 맡았던 산업은행 안양지점의 당사자들은 수익을 실현할 경우 24억원으로 1200억원을 번 일등 공신이 된다. 산업은행의 지분투자 금액이 6조원(2013년 3분기말 기준)을 웃도는 점을 감안할 때 1000억원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수익률 면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투자임에 틀림이 없다.
성공 스토리를 입밖에 낼 수 없는 산업은행의 함구는 위에서 언급한 합병 무산 시나리오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주식매수청권 행사 금액에 따라 이번 딜이 무산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2013년 3분기말 기준 현대엔지니어링의 현금성 자산은 2500억원 가량으로 산업은행이 1200억원을 모두 청구한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행사 금액이 1000억원을 넘느냐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다. 특히 이번 합병이 오너 일가의 후계 구도를 위한 포석이라란 점을 감안하면 1200억원 때문에 합병이 무산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은행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성공 투자 스토리에 대한 함구령이 떨어진 것은 국책은행으로서의 굴레로 보인다. 기업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수익 실현에 집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좋게 비춰지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존립 이유는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기업을 투ㆍ융자를 통해 키우는 것이다. 10개 기업에 투자해 한두개 기업에서 대박이 나면 나머지 8개 기업에 대한 투자 실패를 상쇄하는 구조다. 성공한 기업에서 적당한 시점에 수익을 회수하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산업은행이 이번 성공 스토리를 ‘쉬쉬’ 해야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