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패션 시크릿] 패션디자이너에겐 한국은 아직 척박한 땅
2014-03-03 06:01
패션업계도 '빅토르 안' 나올 판
쇼트트랙의 일인자로 꼽히던 대한민국의 안현수는 왜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됐을까? 한국에선 '운동'하기 힘들다는 것 아닐까? 그 본질에는 전문가들이 얘기하듯 한국 스포츠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패션계도 그의 귀화가 남일 같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에선 패션디자이너가 '패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요즘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에게 러브콜을 많이 보낸다. 한국 패션계에서 일하기 힘들어서 중국에서 활동하려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많아지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 귀화하는 패션디자이너도 생길 수 있겠다. 지난 20여년 넘게 국내 하이패션 유통은 백화점이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유통업에 발전적 기여도가 많았던 부분도 인정 하고, 안정적으로 브랜드를 안착 시킬 수 있도록 성장시켜준 백화점의 긍정적인 역할은 인정할 부분이다.
'옷값의 3분의 1', 바로 한국의 백화점 업계가 디자이너 브랜드에게 받아가는 수수료이다. 서울 시내의 평균백화점 규모는 보통 8층 정도다. A급 백화점은 10층을 넘는다. 그 많은 층을 가득 채우는 건 의류매장이다. 식품매장과 생활가전, 식당 및 문화센터를 빼면 거의 70%가 의류매장인 셈이다. 매장에서 판매와 서비스 하는 거의 모든 직원들은 입점해 있는 브랜드에서 월급을 준다. 백화점에서 직접 월급을 주는 직원은 놀랄만한 소수이다.
서울시내의 몇 개 상위권 백화점들은 매년 1조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한다. 조단위를 넘는 매출에서 국내 의류산업의 미래를 위해 과연 투자되는 돈이 있을까? 가끔 후원이라는 명목의 행사후원은 들어보았다. 신진디자이너 발굴이란 명목으로 편집매장 꾸미고 수수료는 40%를 넘는다. 그런 수익으로 각 지역에 백화점들을 세웠고 홈쇼핑에도 진출 했다. 홈쇼핑에 방송이 나오는 브랜드나 디자이너는 매출에 0.3%에서 1% 정도의 수익을 준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이나 기타 의류제품과 관련해서 관여하지 않는다. 브랜드 이름만 빌려주고, 방송출연만 해준다. 옷값이 백만 원 일 때 백화점은 수수료란 명목으로 30~40% 가까운 수수료를 떼어간다. 평균 백만 원에서 35만원을 떼어간다는 것이다. 브랜드에서는 제품의 제조원가가 30% 넘게 든다. 그 나머지는 재고부담과 물류비, 유통비 인건비등을 뺀다. 이익이 얼마나 남을 거 같은가? 수익이 적어 재투자될 자금 여력이 없다. 거기에 6개월에 한번씩 MD개편이란 명목 하에 매출 하위 브랜드는 퇴출시킨다. 퇴출시키다 보니 이제 입점할 브랜드들이 없어지자. 전 층을 수입 명품브랜드로 채워놓는다. 모든 기업은 이익이 나면 일정부분을 연구 개발비로 재투자한다. 안정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보나 나은 기업의 미래를 위해 재투자 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일 년 전 대통령과 정부가 백화점에게 수수료 율을 낮추라고 권고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화점 업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백화점이 노화가 와서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다. 필자가 지적한다고 우리나라의 패션업계 구조가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칼럼으로 백화점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작은 당부를 하고싶은 분들은 앞으로 우리의 지혜로운 소비자들이다. 중국에 진출하여 성공가도를 가고 있는 패션기업 이랜드도 초창기 국내성공은 길거리 로드샵을 통해서였다. 필자의 얘기가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많은 수익이 패션디자이너와 제조생산자에 가도록, 거리에 있는 많은 로드샵을 이용해 주시라는 부탁이다. 가끔씩은 백화점 건물을 벗어나, 화창한 날씨와 산들 바람을 느끼고 걸으면서, 세상사는 모습, 쇼핑도 즐기셨으면 한다. 그러면 가로수길이나 삼청동 길처럼 새롭고 더 좋은 길, 낭만적인 거리도 많이 생겨나고, 우리의 삶도 패션도 그만큼 더 풍성해질 것 같다.
패션디자이너 김형철. ok7754@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