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우미관 지배인 역으로 연예계에 입문한 배우 황정민(43)은 데뷔 24년차다. 황정민은 경력만큼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 ‘로드 무비’(2002년) ‘바람난 가족’(2003) ‘마지막 늑대’(2004년) ‘너는 내 운명’(2005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 ‘사생결단’(2006년) ‘행복’(2007년)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년) ‘그림자 살인’(2009년) ‘구르믈 버서난 달처험’(2010년) ‘부당거래’(2010년) ‘모비딕’(2011년) ‘댄싱퀸’(2012년), ‘전설의 주먹’(2013년)과 화제작 ‘신세계’(2013년)까지 그가 보여준 배역들은 살아 숨을 쉬었다. 그런 그가 ‘남자가 사랑할 때’(감독 한동욱·제작 사나이픽처스, 이하 남사때)에서 한 신, 한 테이크의 연기를 하는데 3일이나 걸렸다고 하니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황정민을 만났다. ‘신세계’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보여준 장난끼 넘치는 ‘정청’이나 제멋대로인 대부업체 부장 ‘태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진중하면서도 매너 있는 모습에 ‘배우는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 ‘아버지 앞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클라이맥스죠. 아버지한테 ‘라면 하나 드실겨?’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대본을 보는 순간 ‘훅’하고 들어오는 게 있었어요. 잘 할 수 있겠다. 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현장에서 연기를 하는데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잘 안 되는 거예요. 눈물은 주르륵 흐르는데 한 10번 촬영을 했는데 마음에 드는 컷이 없었죠.”
그래서 황정민은 “정말 손 끝이 저릿할 정도의 느낌이 와야한다. 머리 끝에서 시작해 오장육부를 관통하는 느낌이 있어야하는데 그런 느낌이 안 난다”라며 감독에게 “3일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베테랑 연기자로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만 같았다.
“3일 동안 제가 원하는 그 느낌이 오질 않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차라리 전에 찍었던 것을 오케이 하라고 할까? 스태프들이 ‘오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뒤집어 놓는데 그 ‘저릿저릿’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조감독한테 ‘지금 죽을 것 같은데 한번 가볼께요’라고 했죠. 슬레이트는 연기가 끝나고 쳐도 되니까 바로 연기를 시작했죠. 감독이 흡족해하더라고요. 저 역시 3일전과 차이를 느꼈죠. 저릿저릿.”
남일우.[사진=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스틸컷]
이 장면은 “장가가는 게 효도”라는 아버지(남일우)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런 여자를 아프게 한 것이 자신이며, 결혼까지 갈 뻔 했지만 모든 것을 망친 자신이 참 원망스럽지만, 나중에 그녀(한혜진)를 만나면 잘 해달라고 읍소하는 부분이다.
‘한 연기’한다는 황정민이 3일이나 걸린 장면이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본다면 그 감동은 더욱 잘 전달될 것이다.
황정민은 ‘남사때’에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채업체 부장 한태일 역을 맡았다. 태일은 채권회수 때문에 만난 수협 직원 주호정(한혜진)을 만나며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예쁜 얼굴보다, 병든 노부를 모시는 깊은 효심에 더욱 반한 태일 호정에게 일방적 대시를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2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