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중국역사> 1979년 1월1일, 미·중(美·中)수교 체결
2013-12-29 15:18
아주경제 한오종 기자 =
▲ 12월30일(월) - 2000년, 중국 GDP 1조 달러 돌파
중국의 국내총생산(GDP)가 1조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9차 5개년 계획(1996~2000)기간 기대했던 목표치인 8%보다 높은 연평균 8.3%의 경제성장률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후 2005년 2조1000억 달러로 5년 이후 약 2배의 성장을 이루었으며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10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오르게 된다.
▲ 1월1일(수) - 1814년, 태평천국운동의 지도자 홍수전(洪秀全) 탄생
홍수전은 광저우 근처 화현(花縣)농가에서 태어났다. 과거 시험을 목표로 공부에 몰두하다가 몇 차례 낙방한 후 거리에서 유행하던 <권세양언> 이라는 기독교 서적을 우연히 손에 넣고 어느 날 꿈에서 환상을 체험하게 된다. 꿈에서 형뻘 되는 중년 남성의 도움을 받으면서 악마와 싸웠다고 하는데 그는 훗날 그 중년 남성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 후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확신하고 1834년 기독교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이 후 교단을 갖추게 되고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관군과 충돌하게 된다.
1851년3월 홍수전은 스스로 천왕에 즉위하고 국호를 태평천국이라고 한다. 이후 난징을 함락시키는 등 선전했으나 내분과 증국번이 지휘한 상군(湘軍),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1864년 태평천국군은 진압된다.
▲ 1월1일(수) - 1864년, 저명 화가 치바이스(齊白石) 탄생
중국의 저명한 화가이자 전각가인 치바이스가 탄생했다. 마오쩌둥과 같은 후난성(湖南省) 상탄현(湘潭縣) 출신으로 1957년 9월16일 94세의 나이로 베이징에서 병사했다. 그의 장례에는 저우언라이 총리가 참석할 정도로 성대했다.
그는 소박한 민간예술의 풍격과 전통문인들의 화풍을 융합해 중국현대 화조화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전국미술가협회 주석으로 활동했으며 1954년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도 당선된다.
치바이스는 제도권에서 회화 수업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몸이 약해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목공일을 시작했다가, 50세가 되어서야 베이징으로 올라와 미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평생 3만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2011년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서화진품의 밤’행사에서 그가 1946년에 그린 수묵화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가 4억2550만 위안(약 720억원)에 팔리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 1월1일(수) - 1979년, 미중 수교 체결
1972년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주석과 중미수교를 논의한다. 이후 타이완 문제로 체결이 지연되어 오다가 1979년 1월 1일 마침내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1978년12월16일 미중 양국은 공동성명으로 통해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인정하고, 이 범위내에서 타이완과의 문화, 상무 등의 방면에서 비정부적 차원의 관계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1979년 1월1일을 기점으로 타이완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동시에 미국은 타이완과 <공동방위조약>을 체결하고 타이완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시켰다.
▲ 1월3일(금) - 1946년, 국민정부 몽골 독립 승인
이날 중국 국민정부는 외몽골(外蒙古)의 독립을 승인했다. 이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외몽골 지역은 1921년 7월 11일 이미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었다.
1945년 8월 14일 국민정부 왕스제(王世傑) 외교부장과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중-소 우호동맹 조약’을 체결하고 그 부속 협정으로 ‘외몽골 문제에 관한 각서’를 교환했다.
이 각서에서 국민정부는 일본 패망 후 외몽골 주민이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다면 중국 정부는 외몽골의 독립을 승인하고 외몽골과 내몽골과의 경계선을 국경선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근거 1945년 10월 20일 외몽골에서 국민투표가 국민정부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실시됐으며 선거결과를 바탕으로 독립선언이 있었다.
1946년 1월 3일 몽골 인민공화국 부장(部長)회의, 대국민회의,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연석회의가 정식으로 몽골의 독립을 선포했다.
1949년 집권한 공산 정부도 몽골의 독립을 인정했으며 내몽골 지역은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가 되었다. 청조 멸망 후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한 소수민족 중 2차 대전 후에도 독립을 유지한 곳은 몽골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