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스모그와 함께한 베이징의 1년
2013-12-29 14:23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생애 처음으로 스모그란 것을 경험한 것은 베이징특파원으로 부임한지 꼭 2년째 되던 2012년 12월이었다. 어느샌가 하늘이 온통 뿌옇고 아파트 바로 앞 동마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도시 전체가 안개에 휩싸인 듯 했다.
스모그를 처음 봤을 때는 제법 운치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는 시진핑(習近平)이 공산당 총서기로 등극한 지 한달여 되던 때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펼 생각인지 가늠할 수 없을 때였다. 이미 G2국가로 올라선 중국이지만 정치체제가 워낙 베일에 쌓여져 있기에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기사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같은 상황이 스모그에 오버랩되면서 ‘베이징과 스모그는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에 젖기도 했다. 아침 출근길 스모그의 매캐한 냄새 역시 군대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스모그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국의 신기한 광경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한달여가 지나니 코리아타운에 기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동료들, 대사관 외교관, 주재원들 중에 목감기에 걸려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자 본인 역시 목감기에 걸려 마른 기침을 해댔었다. 그렇게 찾아온 스모그는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스모그 자욱한 5일, 스모그 걷힌 2일의 패턴으로 1주일이 돌아갔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3년 새해를 맞았었다.
2013년 1월 중순 무렵부터 일본과 미국, 영국 등지에서 파견나온 주재원들이 가족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에서는 중국 주재원들에게 거액의 생명수당을 지급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낭만으로 느껴졌었던 베이징의 스모그는 그야말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2013년 초 베이징의 겨울은 스모그로 점철된 나날들이었다. ‘언제쯤 바람이 불어 스모그가 걷혀질까’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은 들었다. 그만큼 혹독했다. 그리고 어서 빨리 3월중순이 오기를 기다렸다. 중국에서는 일괄적으로 난방을 실시한다. 거의 모든 집들이 중앙난방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매년 11월중순부터 3월중순까지 4개월동안만 난방을 공급한다. 석탄을 때서 난방을 하는 아파트단지들이 많아 스모그가 생겼다는 해석이 분분했기에 난방공급이 끊기면 이 지독한 스모그도 사라질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3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난방공급이 중단되어 집이 싸늘한데도 스모그는 이어졌다. 사람들은 갸웃했지만 중국 당국은 스모그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대기오염 문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더라. 시종일관 서울시의 공기가 어떻게 좋아졌는지에 대해서 물어오더라.” 2013년 4월 22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궈진룽(郭金龍)서기를 면담한 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했던 말이다. 박 시장이 서울시와 베이징시의 우호협력 강화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당일도 베이징에는 스모그가 뒤덮여 있었다. 당시 베이징시의 PM2.5 수치는 200㎍/㎥에 육박했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PM2.5 기준치는 25㎍/㎥이다. 무려 10배가까운 미세먼지가 베이징시를 뒤덮고 있었던 셈이다.
PM2.5는 머리카락 직경의 1/30∼1/200 수준인 직경 2.5㎛(1㎛는 100만분의 1m) 이하 크기의 미세먼지로, 흡입 시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까지 침투해 심장,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스모그가 극심했던 2013년 1월 베이징 공기오염도는 PM2.5 수치 500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지난해 1월 베이징에서는 한 달 가운데 5일만이 중국 정부가 목표로 하는 대기질 2급 수준을 기록했다.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내외국인은 자신의 휴대폰(스마트폰)에 대기오염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날마다 체크해 마스크를 착용한다든지, 외부활동을 자제한다든지의 나름의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웬만한 마스크가 아니면 미세한 입자까지 걸러줄 리 만무하고, 일반인들이 외부활동을 자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베이징에는 베이징 시민 뿐만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이 거주하고 있다. 때문에 궈진룽 베이징시 서기의 제1순위 관심사 역시 단연 대기정화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과의 대화에서 베이징시 서기의 진심어린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 서기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스모그는 여름에도, 그리고 가을에도 지속됐다.
2013년 가을까지만 해도 장강 이남지역의 대기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스모그는 이때부터 상하이와 저장성, 장쑤성, 장시성 등을 덮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난징시를 비롯 20개 성(省) 등 중국 대륙의 절반 이상 지역에 스모그가 최장 1주일 가까이 이어지는 고통스런 날이 지속됐다. 12월 초 안개, 스모그 이중의, 황색이상 경보는 7일째 계속되면서 52년만에 최악의 스모그를 기록했다. 상하이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지난달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 기준인 ㎥당 25㎍을 24배 이상 초과하는 602.5㎍을 기록했고, 베이징의 수치는 400을 넘나들었다. 상하이, 장쑤성 지역에 스모그가 이처럼 심각하고, 오래 가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수명 5.5년 줄여, 동요하는 민심
중국의 스모그가 시민들의 평균 기대수명을 5.5년 단축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중국인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중국 칭화(清華)대•베이징대, 이스라엘 헤브루대 연구팀이 중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중국 북부 지역에 만연한 유독성 스모그가 기대수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폐암과 심장마비, 뇌졸중 등의 발생 비율을 높인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감축 관련 보고서’를 발표해 오염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토의 4분의 1 지역에 스모그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6억명의 인구가 이 영향권 내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보고서는 심각한 스모그의 원인으로 중국의 불합리한 산업•에너지 구조와 함께 대기오염 방지 관련 법제시스템의 미비와 기상 여건 등 애매모호한 원인들을 늘어놓았다. 참을성 많은 중국인민이지만 슬슬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스모그 이면의 복마전, 그리고 기회
중국 스모그의 원인에 대해서 중국 당국은 아직까지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몰라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공개를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이는 광범위한 공기, 토양, 수질의 악화를 동반했다. 최근에는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 불안정의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중국 정부는 환경법 및 환경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중국정부는 경기회복을 명분으로 4조위안의 경기부양책을 들고 나왔다. 가장 효과적인 단기 경기부양책은 건설업이다. 이로써 중국 전역에서 건설붐이 일었다. 건설업이 성황이면 철강업, 시멘트업, 건자재업도 호황을 구가한다. 곳곳에 공장이 들어섰다. 쇠를 녹이고, 석회석을 고온으로 굽고, 유리를 달구는 공장들은 막대한 열량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열량을 만들어 내기 위한 가장 경제적인 연료는 석탄이다. 엄청난 석탄을 소비하는 공장들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서기 시작한 셈이다. 환경설비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일단 공장을 건설했다가, 문제가 되면 꽌시로 해결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여기저기 공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8년 저금리의 정부지원 은행대출을 이용해 짓기 시작한 공장들은 2012년 봄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2012년 겨울 스모그로 나타난 것이다. 정책지원을 그 즉시 받았던 베이징과 허베이지역은 2012년말부터 스모그가 나타났으며, 시차를 두고 지원을 받았던 상하이 인근지역은 2013년 가을부터 스모그가 나타났다. 그러니 중국의 스모그 뒤에는 허술한 4조위안 부양정책, 관료들의 관리부실, 기업주의 윤리의식 부재, 그리고 각종 이권커넥션이 얽혀 있는 셈이다.
스모그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국 국무원은 강한 대책을 마련중에 있다. 중국 국무원은 최근 상무위원회를 열고 '대기오염 예방을 위한 10개 조치사항'을 발표했으며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대기오염 방지 행동계획' 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기환경이 좋아지기까지는 최소한 5년을 소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중국의 스모그가 심해지면서 우리나라에도 그 영향이 밀려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한국에도 중국발 미세먼지의 공포가 닥쳐왔다. 중국에 비하면 그 정도는 심하지 않겠지만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한편으로는 첨단 매연절감 기술과 청정 도시시스템에 목말라하는 중국에 거대한 환경시장이 열리고 있음은 우리나라에게 기회일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은 과거 극심한 대기오염을 극복해낸 경험과 기술, 노하우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적극적인 진출이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