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종영… '비밀'이 남긴 세 가지
2013-11-15 08:10
14일 밤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비밀'(극본 유보라 최호철·연출 이응복)은 조민혁(지성)과 강유정(황정음)의 사랑이 결실을 맺었고, 안도훈(배수빈)과 신세연(이다희)도 행복한 결말을 암시하면서 끝이났다. 지독하게 아프고, 지독하게 아름다웠던 이들의 사랑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비밀'은 회를 거듭할 때마다 이슈를 생산했다. 드라마 극본 공모작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세심한 연출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방송 초반 다소 진부한 소재와 뻔한 스토리라는 지적이 민망해질 정도로 대본, 연출,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때문에 '비밀'이 남긴 것들에 대한 의미는 남다르다. 'OOO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는 계속 이어졌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차치하더라도 신인작가의 패기, 살아있는 디테일 등 다양한 요소들은 '비밀'을 통해 다시금 평가됐다.
먼저, 황정음.
그룹 슈가 출신의 황정음. 그는 슈가를 탈퇴하고 2007년부터 연기 전선에 뛰어들었다. 드라마 '사랑하는 사람아', '리틀맘 스캔들 1, 2', '겨울새', '에덴의 동쪽', 영화 '내 눈에 콩깍지', '바람' 등에 출연했지만 그의 연기력은 평가절하됐었다. 황정음 이름 앞에는 항상 '연기력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다.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황정음. 이후에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고자 했지만 역시나 반응은 냉담했다. 황정음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한정적이고, 연기의 폭도 넓지 않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황정음은 '비밀'을 통해 일각의 우려와 차가운 시선을 보기 좋게 따돌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교도소행도 마다치 않는 여자, 그 사람에게 배신당해 복수를 꿈꾸는 여자의 섬세한 감정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냈다는 평가다. 특히 회마다 등장했던 오열 신에서는 '황정음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기도 했다.
'비밀은' 2012년 KBS 단막극 극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최호철 작가의 원안에 지난해부터 극본을 쓰기 시작한 유보라 작가가 협업한 작품. 유보라 작가는 2012년 단막극 '태권, 도를 아십니까'로 데뷔 후 '저어새, 날아가다', '상권이' 등을 집필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SBS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의 김은숙 작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작가계의 이단아로 불리고 있다. 9월 25일 첫방송 이후 12%가 넘는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목극 왕좌에 앉았기 때문이다. 마지막회는 18.9%. 자체 최고 기록이다.
이같이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작가의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관계자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대본을 꼽았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기존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있다는 평가다. '비밀'을 통해 이름을 알린 대형 신인작가 최호철과 유보라를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연출.
'비밀'를 보면서 소름 돋았던 시청자들이 몇이나 될까. 매 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스토리 전개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연출에 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퀄리티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만했다.
이응복 감독은 10화 자동차 미등신을 비롯해 3회 교통사고 상상신, 5화 출소하는 강유정신, 7화 폭풍의 언덕을 건네는 신 등 주요 회차 마다 프롤로그를 삽입해 궁금증을 높였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것은 '비밀' 속 진짜 비밀에 대한 암시였다.
또 드라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디테일 역시 소름 끼치게 했다. 스토리의 복선을 소품이나 대사, 배우들의 의상을 통해 암시했기 때문. 그중에서도 세연의 그림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각각의 그림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있는 조민혁의 모습을 그린 그림, 바다 위에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그림 등은 앞으로 펼쳐질 폭풍 같은 전개를 암시하면서 '숨은그림찾기'를 방불케 했다.
이처럼 '비밀'은 연출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 됐다. 5%라는 다소 낮은 시청률에서 시작한 '비밀'이 입소문을 통해 수목극 왕좌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연출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응복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