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정국에 몸 사리는 재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되나?
2013-07-18 16:26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재계가 자연스럽게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8일 재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 같은 푸념 섞인 말을 건넸다. 이날 검찰은 국내외에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운용하면서 모두 2078억원의 횡령·배임·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구속 기소된 대기업 총수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이미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이어 현직 총수로는 세 번째다.
이 회장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국세청은 16일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월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호텔에 이어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에 두 번째 세무조사다. 정기적인 조사라고 하지만 하필 지금 진행한 데 대해 다음 사정 기업 대상은 롯데그룹이 아니냐는 억측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4월 CJ그룹 계열사인 CJ푸드빌, 5월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포털 업계 1위 NHN을 비롯해 외국차 수입업체, 광고대행사 등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다. 이들 업종에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거나 사실상 소유주인 회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으로 과거 정권 및 대기업 비리와 관련한 전방위 사정에 착수했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사업 왜곡 추진, 원자력발전소 납품 비리에 대한 감사 등 공공부문 사정은 물론 롯데쇼핑과 CJ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 압수수색 등 민간부문 사정까지 감사원, 검찰, 국세청 3대 권력기관이 대대적인 부패척결에 나선 모양새다.
사정기관의 기업 수사 및 조사는 정권 초기에 ‘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지금 사정은 다르다. 부패를 없애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대표적인 사례로 불리는 재계에 대한 압박은 그 강도가 훨씬 세다는 것이다. 사정기관들이 이미 대상 그룹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오면서 “다음은 어디, 그 다음은 어디가 될 것 같으니 미리미리 조심하라”는 말이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부패척결과 관련, “정부가 부정부패의 뿌리만은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부정부패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사회적 질병”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기업의 횡포에 피해를 입은 소수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비리 혐의를 제보하면서 재계는 더 더욱 목소리를 낮추고 눈치만 보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업무를 위해 늘 만났던 인사들의 시선이 차갑게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거리를 두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모든 대기업을 범죄자로 대하는 듯한 태도에 겁이 날 정도라고들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최대한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며 일부 방안은 실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도 재계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재계의 대표가 직접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현 입장을 전달해 분위기를 반전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누가 자청해서 ‘방울’을 목에 걸겠느냐는 것이다. 재계 대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도 회원사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재벌 총수 구속 기소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논평을 하지 않는 등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정도다. 구속 기소된 오너들은 모두 전경련 주요 회원사이기도 하다.
대기업 관계자는 “오너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투자를 하고 사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당장은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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