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누구나 쓰기 편한 좋은 제품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2013-07-14 12:00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진간장병에 붙어 있는 라벨을 떼면 라벨이 붙어 있는 병이 국간장병이니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흐뭇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막상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서 선물세트 속 내용물을 정리하는데 어느 간장병의 라벨을 뗐는지 잊어 버렸다. 조미료들이야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 보거나 조금 덜어서 맛이라도 보면 구분이라도 가건만 간장은 냄새도 맛도 너무 흡사해서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장애인이나 어르신들까지도 제품의 기능이나 품목을 쉽게 구분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접근성 (Accessibility)”이라고 부른다. 요즘 나오는 가전제품을 생각해 보자. 스마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이들 제품은 장애인이나 노인이 사용하기 어렵다. 기능 자체를 표현하는 용어도 어렵고 조작하는 버튼도 많다. 일부 제품은 터치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앞을 보지 못하거나 시력이 나쁜 사람들은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세상은 점점 빠르고 좋아지는데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사는 세상은 점점 느리고 나빠지는 느낌이다.
세탁기를 생각해 보자. 출시되는 대다수의 세탁기는 드럼 세탁기 종류다. 과거에 세탁과 탈수를 별도로 하던 수동과 접근성을 비교해 보면 드럼 세탁기는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세탁 전에 정해진 공간에 넣어야 한다. 세제야 작동하기 전에 그냥 세탁물과 넣는다 하더라도 세제 외에 사용하는 유연제나 표백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세탁의 방식이나 종류를 선택하기도 어렵다. 수동 세탁기야 20분을 세탁할지 15분을 세탁할지 레버만 돌리면 되지만 드럼 세탁기는 사전에 세팅돼 있는 기본 세탁이 아니고는 이것저것 조작해야 작동이 가능하다.
비단 세탁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 출시되는 일부 제품에는 터치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많은 전자제품들이 여러 가지 특화된 기능을 가지고 있고 무선 인터넷이나 홈오토메이션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상당수 장애인들이나 일부 노인에게 이러한 기능은 사용하지도 못하고 존재 자체도 인식되지 못한다. 결국 장애인이나 노인은 접근조차 불가능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구입해서 불편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제 제조사들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이나 노인도 소비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미국 성인의 거의 50%가 당뇨나 비만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달고 짜고 기름진 것의 판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소비자들도 외면한다. 식품 표기에 트랜스 지방이라는 말은 사라졌고 ‘무설탕 (No sugar)’·‘저염식품 (Salt free)’이라는 말이 일반적이다. 가전제품도 이와 유사하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인 지금 장애인이나 노인을 포함해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성공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