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권석림의 인터그레이션] 명의(名醫)가 갖출 기본덕목
2013-07-09 21:02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던 한 70대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녀도 병이 호전되지 않자 해당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천신만고 끝에 예약한 뒤 진료실에서 들은 첫 말이다.
그 교수는 두 달가량 분량의 약을 처방해주며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했다. 치료를 마치기도 전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환자를 불러 앉히며 무안까지 줬다.
환자는 해당 교수의 실력을 믿고 ‘병만 고쳐보자’는 심산으로 애써 참으며 조용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성심껏 보지 않은 진료 때문인지 처방된 약도 잘 듣지 않았다. 환자는 음식을 섭취하면 바로 속쓰림과 구토, 두통을 동반하는 증상을 보여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이상은 병원에 다녀온 한 독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밝힌 내용이다.
이 같은 사연은 아쉽게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몸을 맡긴 환자는 ‘행여나’ 하는 마음에 대부분 속으로 삭이게 마련이다.
수도권에서 꽤 유명한 안과병원에 다니던 한 독자의 억울함도 있다.
백내장 등으로 인한 여러 안과 질환으로 병원에서 주사치료 중 왼쪽 눈 아래가 부풀어 오르는 증세가 나타나자 전문의는 다짜고짜 “수술하면 된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60만원이 넘는 수술비 역시 환자 본인이 물어야 한다. 앞으로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조용히 수납창구 앞에서 기다리던 환자는 또 다시 황당한 일을 경험하고야 만다.
한 간호사가 디지털카메라로 아무런 말 한 마디 없이 환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돌아간 것이다.
“왜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어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환자는 ‘전문의의 지시가 없인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짐작만 할 뿐 여전히 아무런 추궁도 못하는 신세에 속만 타들어갔다.
굳이 신묘한 의술로 박애를 실천하며 ‘의성(귀신과 같은 명의)’으로 불리는 허준이나 봉사와 헌신적인 삶을 토대로 오지인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교육과 인술을 베풀고 간 고 이태석 신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치료하는 전인적인 의술을 시행하는 것이 의사의 덕목이다.
환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것이야 말로 신뢰받는 의사의 첫걸음이고, 이는 병을 고치는 것만큼 중요하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난 의사도 언젠가는 환자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나이 들어 아픈 거 하나만으로도 서러운 사람들이다.
찾아오는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펴주는 것이 진정 명의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