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푸른 숲’을 꿈구다!
2013-07-07 17:09
최태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 국장
최태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 국장. |
우리나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외형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LCD·OLED 등 평판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세계 1·2위 자리를 다툰다. 2012년을 기준으로 양 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생산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6.8%, 15.6%에 달하니 그야말로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인 셈이다.
하지만 몇몇 거목이 있다고 해서 그 숲이 반드시 건강하다고 할 수 없듯이, 우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취약성이 속속 발견된다. 소수 대기업들의 양호한 실적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주변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일례로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의 국산화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소재분야 역시 포토레지스트·편광필름 등 핵심 품목의 대부분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외형은 화려하나 그 혜택이 중소기업들에까지 골고루 전달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중소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에 비해 5∼6% 낮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최종 제품이 아닌 부품산업으로서 생산단계가 단순하고 협력업체 수가 타 산업에 비해 비교적 적은 반면, 수요기업과 장비·소재 협력기업 간 기술결합도가 높은 산업에 속한다. 한 마디로 협력업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대·중소 협력관계가 지속되어야 수요기업의 경쟁력도 향상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안정된 경영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수요 대기업과의 장기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기술 투자만이 핵심 경쟁력을 갖추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업계도 공감하고 있다. 애플 중심의 '앱스토어' 생태계와 구글 중심의 '안드로이드' 생태계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는 지금 기업간 경쟁이 아닌 생태계 전반의 경쟁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역시 수요 대기업과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활발한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해외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손쉽게 마주할 수 있는 국내 기업간 네트워크가 경쟁력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의 협력 생태계 구축 노력은 비교적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고 있고, 동반성장을 위한 조직도 기업별로 갖춰져 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강화해 이제는 실질적인 대·중소 협력으로 동반성장의 결실을 맺어야 할 때다. 각계의 경제민주화 요구에 수동적으로 부응하는 차원이 아니라, 중소 협력기업들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을 확실하게 뿌리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춰 나가야 한다.
지난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학·연이 모여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을 위한 또 한 번의 다짐을 가졌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가 건강한 기업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푸른 산업의 숲'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