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고> 제2연평해전을 기리며

2013-06-29 11:16
[IMG:LEFT:CMS:HNSX.20130629.005043816.02.jpg:]<br/>경기북부제대군인지원센터장 강만희

호국보훈의 달 6월도 어느덧 거의 지나가고 있다.

우리 국민에게 6월은 민족역사상 잊을 수 없는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지금의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헌신을 되새기는 달이었다.

그러던 2002년 6월 29일, 모든 국민이 월드컵에 환호하고 있을 때, 서해바다 고속정 위에서는 한 젊은이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온몸에 100여개의 파편을 맞으면서도 여기저기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부당상한 동료를 돌보기 위해서였으나 그는 끝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우리 서해바다를 지키던 참수리호는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을 받아 순식간에 화염과 비명소리로 뒤덮였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은 포대가 적의 포탄에 명중되어 화염에 쌓인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응사하다 전사하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비록 전사자가 발생했지만 30여 분간의 전투에서 북의 도발로부터 서해를 지켜낸 우리 해군의 승전이었다.

그러나 한 때는 교전이라 불리고, 추모식이 없어질 위기까지 겪었다.

2008년 4월 서해교전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하고, 2011년도부터는 추모식에서 ‘승전기념식’으로 바뀌면서 승리의 역사를 후세에게 올바르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해전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싸우다 전사한 6용사의 이름은 해군의 차기 유도탄고속함으로 재탄생하여 당당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비록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빗발치는 적의 포격 속에 아수라장이 된 함정 위에서 그들이 겪었던 처절함과 죽어가는 전우를 살리고자 했던 용기와 분투를 생각하면 뒤늦은 명예회복이었고, 지금까지도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것은 제2연형해전의 6용사와 같은 호국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우리의 국토, 영해, 영공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힘쓰고 있는 현역군인들과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제대군인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인식으로는 제대군인들이 장기복무 후 받는 퇴직금이나 연금 덕에 노후대비가 잘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군인은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일반 공무원 제도와는 다르게 근속정년과 계급정년 등의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역하는 인원이 많다.

자녀교육에 한창 투자해야 하는 40대 초반에 전역하게 되면 취업에 대한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사회에 나오게 되고, 연금 비수급자로 전역하는 30대 후반의 경우에는 당장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취업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은 한 해 동안 약 6,000여명이지만 최근 3년간의 조사에 따르면 5년 이내 전역자들의 취업률은 55.9%에 지나지 않는다.

선진 외국의 제대군인 재취업율이 90% 이상인 점과 비교할 때 대단히 낮은 비율이라 하겠다.

제대군인의 취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이 제대군인의 전직에 있어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의 발전 방향을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이 명예로운 보훈’으로 제시하고, 참전명예수당 인상, 국가유공자 의료·요양 등 복지서비스 확대, 정전 60주년 국제적 기념사업 실시, 나라사랑 교육의 실시로 국민 호국정신 함양 등의 과제와 함께 제대군인 일자리 5만 개 확보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이러한 노력들과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제대군인의 취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제대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현역 군인들의 충성심까지 고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