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주사위는 던져졌다"…경기부양시대 '본격화'

2013-03-24 18:35
지금까진 예고편에 불과…양적완화론자 구로다 BOJ 총재 취임<br/>구로다 "2년 안에 인플레이션 2% 달성, 뭐든지 하겠다" 의지<br/>다음 달 BOJ 첫 통화회의서 추가 자산매입 전망…장기채 선호

아주경제 이규진 기자= 구로다 하루히코 신임 총재가 지난주 공식 취임하면서 일본 중앙은행(BOJ)의 새 항해가 시작됐다. 양적완화론자인 구로다 총재가 지휘권을 잡으며 '무제한 돈 풀기'인 아베노믹스를 본격적으로 실행할 준비도 완료됐다. 구로다 총재는 20여년 이상 지속한 디플레이션 타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2년 내 물가 2% 상승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이를 위해 대담한 양적완화를 실시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의 경기부양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평가했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 신조 총리와 함께 일본을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게 할 해결사가 될까 아니면 허울 좋은 망상가로 전락할까.

◆구로다의 비밀 병기는? 첫 통화회의서 장기채 매입 전망

구로다 총재의 양적완화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2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금융시장에 대량의 자금을 공급하는 양적인 금융완화가 필요하다"며 "2년 안에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 완만한 물가 인상을 유도하겠다는 리플레이션 정책을 펼치겠다는 전략이다. 1930년대 '쇼와 공황' 불황기 때 다카하시 고레키요 재무상이 시도한 정책이다. 그는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강조했다. 평소 상당히 주의 깊고 신중하다는 구로다 총재의 이 같은 대담한 발언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직 구로다 총재는 비밀 병기를 공개하지 않았다. 단지 버블의 우려가 높지 않다는 생각을 내비쳐 회사채나 특정 주가지수와 연동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국채에 비해 리스크가 높은 금융상품의 구매 확대를 검토할 것으로 전망됐다.

투자자들은 BOJ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유럽중앙은행(ECB) 등의 경기부양 트렌드에 발맞춰 수조엔의 채권을 사들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장기채 및 비즈니스 대출 금리를 낮추고 투자를 촉진시킨다는 설명이다. BOJ가 조만간 101조엔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10조엔 이상 확대할 것이 당연하다고 추산했다. 저널은 BOJ가 부동산 투자 펀드를 비롯해 장기간 금융자산을 구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BOJ가 10∼30년 만기 장기 채권을 구입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음 달 3∼4일 구로다 총재 취임 후 첫 통화정책회의가 열린다. 전문가들은 첫 회의에서 자산매입기금을 추가로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보다 일찍 긴급회의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구로다, 만성화된 경기침체에 해결사 되나

과연 구로다 총재가 인플레이션 2%의 목표를 달성할까.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은 교과서적인 이론을 벗어났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는 1993년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 15년간 평균 급여는 7% 떨어졌고 지방 부동산 가격은 51%나 폭락했다. 세금 수익도 14% 감소했다. 일본 경제는 이미 중국에 최대 경제국 2위 자리를 내놓았다. 계속된 엔고로 수출시장은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에 밀렸고 도호쿠 대지진이란 재앙까지 겹치면 내수 침체는 더욱 악화됐다. 정부의 부채는 날로 급증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가 넘어선 지 오래다.

BOJ가 일본 경제의 재기에 성공한다면 중국과 대등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일본의 거대한 국채시장은 요동칠 것이고 2200조엔 상당의 금융시스템도 불안정해질 것이다.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일본 금융시장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11월 중반부터 현재까지 일본 증시는 40% 이상 증가했다. 엔화 가치는 18% 이상 하락했다. 바클레이스는 엔화가 달러 대비 30엔 이상 떨어져야 2년 안에 인플레이션 2%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아베노믹스와 BOJ의 목표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자금을 푸는 것은 만성이 된 침체를 일으키기에 역부족이란 평가다. 문제는 자금이 맞물리는 시기다. 기업의 수익과 급여가 높아지기 전에 양적완화로 수입가격이 높아진 만큼 소비자 물가도 뛴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가계 및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 가격은 4%가량 증가했다. 주요 업체의 전기료는 19%까지 올랐다. 원전의 폐쇄로 에너지를 수입하면서 이 같은 비용을 초래했다. 덕분에 택시요금도 다음 달부터 9% 오른다. 18년 만에 첫 인상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년 뒤 소비자물가지수를 2% 상승시키려면 GDP가 앞으로 2년 동안 매년 4% 이상씩 증가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주요 경제연구소에서 예상하는 일본의 2014∼2017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전 BOJ 총재인 시라카와 마사아키는 "침체된 물가를 억지로 올리려는 BOJ의 노력은 허공에 주먹질하기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