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이두식화백 절친 이상벽 이사장 "친구야…." 눈물 왈칵
2013-02-26 17:40
26일 인사동에서 이두식화백 영결식..한국미술협회장으로 거행
26일 이상벽 한국저작권연합회 이사장이 인사동에서 진행된 이두식화백 영결식에 참석,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친구야…'. "… ……".
한참동안 이어진 침묵. 마이크사이로 울음이 전해졌다. 이상벽(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이사장이 왈칵 슬픔을 토해내자 여기저기서 눈물 훔치는 소리가 터졌다.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이 이사장은 코트 안쪽에서 꺼낸 편지를 읽어나갔다.
이날 홍익대 미대 동기이자 절친이었던 이상벽 이사장은 이 화백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도중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했다. 눈물을 훔쳐내는 이 이사장을 바라보는 하객들도 모두 코끝이 빨개진 채 입을 앙 다물었다.
사진작가로 변신한 이 이사장의 사진위에 이화백의 능란한 붓질을 더한 '이상벽+이두식'전이었다.이 작품들은 옛 선비들이 한 화선지 위에 그림을 나눠 그리며 우정을 쌓았던 방식처럼 각자의 서명을 함께 써넣어 미술계 화제가 됐었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몇번을 울컥이는 이 이사장 옆엔 영정사진속 이두식 화백이 환한 미소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 추상화의 대가이자, '미술계의 마당발' 이었던 고 이두식 화백은 지난 23일 경기 구리시 자택에서 잠든 후 그대로 떠났다.
평생을 천착했던 그의 작품 '잔칫날'처럼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둔 그에겐 축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타계하기 2일전인 21일 선후배 지인 동료 제자들을 불러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정년퇴임식을 열었고, 전날밤인 22일엔 제자들이 마련해 준 자신의 퇴임 기념전 개막식에도 참석했다.
오방색 축포 터지듯 화끈하고 강렬한 그의 그림처럼 고인은 언제나 활기가 넘쳐었다. 그날도 변함없이 왕성한 활기를 자랑했었던 그는 “정년으로 강단을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심정이라 설렌다. 달라진 그림을 내놓을테니 기대해 달라”며 더욱 의욕을 보였었다.
향년 66세로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둔 고인은 전시 준비를 비롯해 그동안 많은 일을 하느라 과로한 끝에 심장마비가 온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장으로 치러진 이화백의 영결식은 이 화백의 선후배 동료 친구 제자등 300여명이 참석, 숙연하게 진행됐다. 이후 고인은 경기 파주시 청파동 성당 묘역에 안장됐다.
2009년 4월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열었던 '이상벽 이두식'전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했던 고 이두식화백(왼쪽)과 이상벽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
◆다음은 이상벽 이사장이 고 이두식 화백 영결식에서 읽은 편지 전문
친구야.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혹시나 자넨 알고 있으면서, 우리들만 몰랐던 건 아닌가?
퇴임식이랍시고 알만한 사람은 다 불러놓고, 술따라주고 한장씩 기념 사진까지 찍어주고….
나중에서 들은 얘기다마는, 그날따라 난 밥벌이 하느라 참석을 못했던게 내내 한이 됐구나.
퇴임식 하루전날 내게 전활 걸어와 "너 내일 꼭 올거지?" 했을때, 난 "야, 어떡하냐. 마침 먹고사는 일이 걸렸으니…"
내가 그날 사회를 봐야 한다는 말에 사정얘길 했더니 넌 껄껄 웃으면서 "알았어. 우리 교직원 시킬테니 녹화나 잘해" 그랬었지.
전활 끊고 나서도 영 찜찜한 기분이 들어 아나운서하는 우리 딸래미한테 대신 좀 가줄수 있느냐고 했더니 걔마저 2시간 생방이래나 뭐래나.….
이렇게 내내 천추의 한이 될줄은 정말 몰랐네.
여기는 자네가 늘 휘집고 다니던 인사동 입구일세.
2년전인가 내 사진위에 자네 작업을 얹은, 나름 귀찮은 전시회를 하자고 했을때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내 제안에 두말않고 선뜻 참여해줬던 자네.
그 바쁜사람이 내게까지 손을 내밀어줬을때, 이제사 하는 얘기지만, 난 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웠다네.
그동안 이래저래 너무 힘들고 너무 바빴지?.
여기저기 주는 술도 다 받아먹고, 그나마 담배무는 시간이 잠깐이나마 쉼표였을까.
그 커다란 덩치로 사방팔방 씩씩거리며 뛰어다녔던 우리들 모두의 영원한 친구이자 실로 자랑꺼리였던 자네.
웬 욕심은 그리도 많았는지,
오는 4월엔 예술의전당을 통으로 빌려 대대적인 작품전을 열거라면서 조영남 형이랑 김중만이한테 한점씩 찬조출품해야된다고 윽박지르던 자네.
앞으로 만점은 더 그려야 한다고 폼을 재던 자네가 이렇게 덧없이 떠나버리면 그 숙제는 누가 다 풀려나.
아직 장가도 못들인 두 아들은 또 어쩌려나?.
언제간 고향 영주에다 늙으막에 머물집을 한칸 구해놨다며 그렇게나 좋아라하던 자네였잖은가.
허나 그집도 못가게 된건가?.
어떡하겠는가. 이게 어디 자네 맘대로 되는 일인가.
남은 우린들 누가 제 맘대로 갈때를 알수 있겠는가.
길었든, 짧았든, 이곳에 있는 동안 너무나도 재미있고 행복했었네.
이젠, 그만 붓좀 내려놓고, 10년이나 못 만났던 마누라곁에서 옛날처럼 응석부리며 잘 지내게나….
2013년 2월 26일 친구 이상벽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