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부회장, 경제민주화도, 책임경영도 싫다!

2013-02-20 17:00

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계열사 빵집 경영을 끝까지 사수하며 경제민주화 정책에 역행하던 신세계가 이번에는 '책임경영'도 싫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신세계그룹은 20일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와 이마트 사내이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등기이사 직함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CEO로서의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셈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정용진 부회장의 이번 결정이 '오너 경영자의 책임 회피'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 측은 "정 부회장의 사내이사 사임은 지난 2011년 기업 인적 분할 당시부터 논의해왔다"며 "각 사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경영 1차적 책임 등기이사… 법적책임 면하기 위한 꼼수

업계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 영향으로 그룹 총수들이 연이어 사법처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적책임을 면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이 민형사상 또는 상법상의 법률적 판단을 받아야 할 경우 1차적 책임은 등기이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등기이사는 인수합병, 신규투자 등 사내의 모든 의사 결정을 하는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반면 책임도 막중하다. 등기이사에서 이름이 빠지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유다.

하지만 그룹 총수들이 곧 최대주주들인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에게 힘이 실어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실제로 이명희 명예회장을 비롯해 정용진 부회장 일가가 등기이사에서 빠져도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27%씩 보유하며, 기존처럼 매일 본사로 출근해 경영에 관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5일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에 대해 12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신세계·이마트·에브리데이리테일 등이 베이커리 계열사인 신세계SVN에 판매수수료를 과소 책정하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에서다. 여기에 정용진 부회장은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정식 재판에 회부된 상황이다.

또 이마트는 지난해 노조설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며 직원사찰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으로 서울노동지방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혐의가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검찰조사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 "등기임원 보수 공개 오너들에게 부담"

이와 함께 최근 등기임원에 대한 보수를 공개하는 법안이 추진 중인 것도 사내이사직 사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풀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2011년 신세계와 이마트에서 연봉 16억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연말 배당금액까지 더하면 1백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받은 셈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기업 총수를 비롯한 대기업 임원들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사업보고서 제출대상 법인은 임원 모두에게 지급된 보수총액을 기재하게 돼 있는데 이를 개정해 임원 개개인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번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임이 최근의 검찰조사 등과는 무관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정용진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사내이사 사퇴는 전문경영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과 동시에 그룹 신성장동력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그룹 총수가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라며 "경제민주화로 인해 그룹 총수들이 줄소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 부회장 역시 검찰 조사까지 받으니까 결국 법적책임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 아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은 최근 논란이 됐던 노조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미 대표이사 위치에서 모든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며 "고용부 조사로 부당한 내용이 나타나면 당시 대표였던 정용진 부회장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