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앤다던 서울시… SH공사 불법엔 눈 감나

2013-01-07 08:05
SH공사, 불법 도급계약 맺고 근로자에 수시로 해고 통보<br/>산하기관 고용 감찰 부실…구체적 대책 마련도 없어

아주경제 권경렬 기자=#. 2010년 초부터 서울시 SH공사에서 민원인들을 상대로 상담 업무를 맡았던 A씨는 지난해 11월 "그만 나오라"는 SH공사 측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해고됐다. 현행법상 근무 2년을 넘으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SH공사에서는 각종 수당 및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지 않기 위해 A씨를 자른 것이다. SH공사에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A씨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서울시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청소분야 근로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비정규직 개선 대책을 발표하는 등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산하기관에 대한 고용관계 관리감독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취재 결과 SH공사는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으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파견 근로계약으로 전환하라는 시정권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판촉·마케팅·분양 상담 등의 업무를 맡으면서 SH공사의 지시를 받아 일했지만 그동안 불법 도급계약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파견직은 원청기업(SH공사)이 하청기업으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아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리지만, 도급직은 업무 지시를 원청회사가 아닌 하청회사로부터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파견직은 1년 단위의 계약기간 내에는 고용이 안정되지만 최대 2년 이상 계약하지 못한다. 파견직이 2년 이상 근무하려면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반면 도급직은 2년 이상 근무를 할 수 있지만 수시로 해고를 당할 수 있다.

SH공사는 그동안 파견 형태의 업무를 맡았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도급직으로 고용해 왔지만 고용노동부에 의해 불법적인 고용 형태라는 것을 지적받았다.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 근로개선1과 박연재 감독관은 "SH공사에 대한 통상적인 점검 중 위법 사항이 있어 지난 9월 시정조치했다"고 말했다. 고의성 여부에 따라 '위장도급'으로도 볼 수 있는 사안이지만 고용노동부는 SH공사에 고의성이 없었다고 보고 시정권고에 그치는 '불법도급'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SH공사가 하청 업체 근로자들을 수시로 해고하기 위해 도급계약을 유지했던 게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심윤수 SH공사 판촉팀장은 "도급직과 파견직은 명령체계의 차이일 뿐 업무 내용이 바뀌거나 다른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노동부의 시정권고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모든 직원들을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의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속 2년이 넘은 일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지난 여름 SH공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의 시정 권고 이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를 당했다.

SH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경우 도급직일 때는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고용불안 상태였다가 파견직으로 전환된 지금은 2년 후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SH공사의 방침 때문이다. SH공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업무가 집중될 때만 파견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정규직은 물론 무기계약직으로도 전환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현재 SH공사에서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이제 곧 1년 계약기간이 끝난다"며 "계약이 연장되더라도 최대 2년밖에 근무하지 못하는 만큼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직까지 서울시의 비정규직 개선 대책의 직접적인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과 12월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정규직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청과 지하철역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7000여명 이상이 직접고용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김수덕 서울시 일자리정책팀장은 "SH공사 등 산하기관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아직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올해 실태조사를 거친 뒤 구체적인 대책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