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오르던 말던?..32년 만의 흉작에 정부만 "수급 문제없다"
2012-10-25 15:20
태풍·이상기온 원인..농민들 창고에 쌀 보관 "더 오르길 기다려"
아주경제 김정우 기자= 햅쌀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오히려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쌀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쌀값은 대량 출하되는 10~12월 수확기에 하락했다가 그 다음해 2~3월 이후에 상승세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25일 at에 따르면 24일 기준으로 시중 도매상에서 유통되는 쌀 20Kg(상품) 가격은 4만2400원으로 수확기 이전보다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올해 수확기 쌀값이 오르는 주된 원인은 연이는 태풍과 이상기온에 따른 백수 피해로 수확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백수란 벼알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이삭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말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백수피해가 발생한 지역은 전국적으로 10만ha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하시기 쌀값의 오름세는 지난해 역시 발생했던 바 있다. 쌀 생산량이 422만t을 기록, 냉해로 생산량이 이례적으로 급감했던 1980년의 355만t 이후 31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지난해 실수확량(422만t)이 올해 민간 신곡 수요 404만t 보다 18만t 많기 때문에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히며 이를 일축한 바 있다.
이같은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올해 수확기 쌀값 상승이라는 악순환으로 고스란히 되돌아 왔다. 올해 상황은 지난해 보다 나빠졌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은 407만4000t으로 지난해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32년 만의 흉작인 것이다.
비록 식생활 패턴 변화로 내년도 민간 신곡 수요량 역시 401만5000t으로 작년 대비 줄었지만, 쌀 생산량의 감소폭은 이보다 더욱 크다. 쌀 생산량에서 민간 신곡 수요량을 뺀 쌀의 양도 5만9000t 밖에 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현 추세라면 내년도 쌀값은 올해 보다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농지면적 감소와 이상기온에 따른 생육여건 악화 등 어느 하나 개선될 요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쌀 문제와 관련해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민간 신곡 수요량이 예상 쌀 생산량을 밑돌기 때문에 수급에는 문제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양곡년도말 기준 정부쌀 이월재고만 해도 84만t 수준으로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72만t)을 넘어선 상황”이라며 “내년도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쌀의 경우 지난해 국산 쌀 재고분 8만8000t을 제외하면 식용으로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쌀 내역을 보면 2008년도 쌀(18만7000t)과 수입쌀(44만9000t)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입쌀의 상당량은 가공용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문제점을 앉고 있다.
쌀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농민들이 쌀값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해 정부 수매를 기피하는 현상 또한 나타났다.
지역 농산팀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농사를 많이 짓는 대농들은 창고에 수확한 쌀을 보관한 채 가격이 더 오르길 기다리는 눈치다"라며 "쌀이 시중에 잘 돌지 않는 것도 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