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아주중국> 이철성 칼럼

2012-09-27 17:13
중국 통계의 허와 실<br/>글 이철성 한국은행 전 베이징대표처 소장, JP모건 상임고문


한 나라의 경제상황이나 세계경제동향 파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은 통계수치이다. 특히 세계경제가 유럽재정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재정위기 관련국이나 주요 선진국의 통계수치발표에 세계인이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왜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다른 나라의 경제지표가 내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기업 주식의 가치에 영향을 주고 내 재산상태에 타격을 주는 것일까. 특정국가의 경제지표 0.1% 변동소식이 때론 경제면의 톱뉴스가 되고 주식시장을 요동치게도 한다. 정말 0.1% 변화가 그리도 중요할 정도로 통계가 정확하게 만들어지는 일까. 어쩌면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통계수치의 자그마한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성 싶다.

통계수치가 이렇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보니 통계를 작성하는 사람들이나 통계 수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때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하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계수치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근년에 통계조작과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아르헨티나 정부의 물가조작 사건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 2007년 이후부터 일부 경제학자들에 의해 정부가 소비자물가통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고 이를 못마땅해 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해에 해당 경제학자들에게 일인당 12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이 아르헨티나 정부에 국제기준에 맞게 통계를 생산할 것을 권고했고 미국 통계학회를 위시한 국제사회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아르헨티나 정부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 사회당 정권의 국가 통계 조작 사건이다. 유로존 회원권을 얻으려고 통계당국이 나서 고의적으로 재정적자 규모를 줄였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EU 통계청에서 그리스를 회계자료 조작 혐의로 고발했다. 그 결과 그리스 국채금리가 치솟고 투자자들은 그리스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되자 결국 그리스는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국가에 의한 통계조작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한 나라의 대외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그 파장이 전세계로 확산되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한다.

위 두사례와 달리 아직 의혹에 불과하지만 금년 6월 중국 경제성장률 통계에 대해서 또다시 조작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수년에 한 번씩은 반복적으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중국 통계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정권 성립 이래 수십년간 지방단위 조직의 통계수치 조작이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官出数字,数字出官(관리가 통계수치를 만들고 통계수치는 관리를 만든다, 즉 통계수치가 관리의 출세를 좌우한다 )라는 풍자적 표현이 유행할 정도로 통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크다.

과거 이러한 현상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2003년 3월 주룽지(朱镕基)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중국에 만연한 통계자료의 조작과 과장현상을 신랄히 개탄까지 했을까. 그 이전인 1998년에도 장이 전 국가통계국장이 통계작업에 대한 행정관여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1958년의 대약진운동을 예로 들어 통계의 거품현상이 국가적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참고로 대약진운동은 1958년 중국경제의 빠른 성장을 위해 마오쩌둥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 때 보고된 통계에 의하면 이 운동은 대단히 성공한 경제계획이었다. 예를 들면 농업생산량은 전년도에 비해 1000%, 심지어 1만%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실상은 재해와 운영 미숙으로 농작물 수확은 감소하고 세금만 증가하여 농민들은 아사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었다. 대약진운동의 참상은 경제계획에 대한 조기시정 기회를 놓치게 한 엉터리 통계가 화근이었다.

90년대 후반 이후 많은 서방 언론매체나 전문가들이 중국경제 침체론, 더 나아가 중국 경제패망론을 주장해 왔는데 상당수 주장들은 그 기저에 중국 통계에 대한 불신을 깔고 있다.

중국의 통계조작의혹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메뉴는 GDP 통계이다. 그리고 대부분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 출현한다. 1989년 천안문사태 발생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시, 그리고 2008년 국제금융위기 발생 다음 해의 경제성장률 과장(뻥튀기) 의혹이 비근한 예들이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통계조작의혹이 제기되곤 했는데 예를 들면 금융기관 부실채권규모 축소은폐의혹은 2000년대 중반까지 자주 등장했다.

그간 서방 학자나 연구기관, 그리고 언론매체에 의해 주장된 경제성장률 과장 의혹은 모두 실제 조작여부에 대한 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경제 성장률을 짐작할 수 있는 대용지표의 움직임으로 조작 여부를 판단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 Economist지는 전기사용량과 GDP간의 괴리를 근거로 1989년과 1998년 두 차례 경기침체 때의 중국 경제성장률이 1989년 -1.5%(공식 GDP 성장율은 4.1%), 1998년 5%(공식 GDP 성장률은 7.8%)로 공표수치보다 크게 낮았을 것으로 추정(The art of Chinese massage, 2009.5.)한 바 있으며 미국 피츠버그대 대학 T.Rawsky교수도 1998년 성장률이 대용지표인 에너지소비량 증가율(-1.6%)과 병존 가능한 수치인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 What‘s Happening to China’s GDP Statistics?, 2001년)한 바 있다.

금년에는 지난 6월 2/4분기 경제성장률 발표를 앞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런던 소재 경제조사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분석결과를 인용, 통계 수치 신뢰성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번 제기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금년 1/4분기 경제성장률이 발전량, 철도 화물량, 부동산 건설 등 정치적 개입이 어려운 데이타로 판단해 볼 때 공식 수치(8.1%)가 실제보다 0.5%포인트 높게 발표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뉴욕타임스(NYT)도 중국이 경제 수치 날조를 통해 경제둔화의 심각성을 감추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중국은 2010년부터 통계조사에 대한 독립성 견지, 통계조작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통계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방매체에 의해 통계의 신뢰성에 다시 의문이 제기된 것에 당혹해 하는 분위기이다.

중국 국가통계국(NBS)은 중국의 경제통계가 과장됐다는 주장에 대해 “증거에 근거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인민일보등 관영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면 인민일보는 주하이빈(朱海斌) JP모건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중화권 경제 연구 담당자의 기고를 통해 뉴욕타임스가 들었던 논거는 충분치 않다고 반박했다 . 중국 전 사회의 전기 사용량 수치는 전력공급기업이 전자보고서의 형식으로 통계부문에 전달하는 데 전력공급업종의 집중도가 매우 높아서 이들이 대규모로 조작에 가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각종 경제 수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이러한 수치들이 나타내는 경제활동 추세에서 눈에 띄는 모순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대상의 하나가 중국통계의 정확성 문제이다. 정확한 통계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 조사 분석은 현상을 오도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져 경제에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중국 통계의 정확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하도록 하여 보고서로 낸 적이 있다(2009.8. ‘중국통계의 정확성문제’, 한국은행 북경사무소).

당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통계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첫번째 지적 사항은 지방관리의 업적평가가 통계수치(특히 GDP)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어 지방정부 단위의 통계조작이 빈번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통계국의 주요 통계보고서가 발표전에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에 사전 보고돼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통계 작성 방법 및 운용에 대한 투명성이 낮고 통계국 직원의 자질도 대체로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끝으로 중국에서 공표된 GDP 통계는 여타 대용지표의 움직임 등에 비춰볼 때 의심이 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지만 대체적인 추세와는 부합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 후 2010년부터 개정된 통계법이 시행됨으로써 통계수치에 대해 외부에서 영향력를 행사할 개연성이 다소 줄어들었으며 중국정부도 통계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개선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2012년 1/4분기 경제성장률 통계를 두고 일부 서방매체에 의해 다시 불거진 통계조작 논란은 다소 과도한 면이 있다고 판단한다. 더우기 통계에 대해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인 개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다만 실적에 연연하는 일부 지방정부 관리들이 일부 지표의 수치를 다소 부풀렸을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으나 이것이 중국 전체의 경제성장률 추세를 과도히 왜곡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통계와 관련하여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이 과거에 통계에 대해 저지른 업보로 인해 아직까지도 외부세계에서 중국통계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중국통계 조작논란의 과정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은, 통계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은 짧은 순간이지만 통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의 대상이 되는 국가는 자국 경제정책의 효과성에 제약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아주 오랜 기간 신뢰성 있는 국가로 인정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그리스의 통계조작사건과 중국의 통계조작 논란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나라 통계담당자들이나 정부관료들도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통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