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작품이 변했네..'붉은산수'이세현 폭죽터지듯 화려한 '분재회화' 선봬

2012-08-30 21:32
29일부터 학고재갤러리서 신작등 회화 21점 조각 4점 전시


24일 '붉은산수'로 알려진 작가 이세현이 신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작가는 환경에 따라 작업이 바뀝니다. 한 작품, 한가지색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금의환향'한 '붉은 산수' 작가 이세현(45)이 변했다. '변하기 어렵다'는 미술시장에서 그의 변신이 놀라울정도다.
2006년 영국 런던미술시장에서 먼저 히트를 친 '붉은 산수'그림이 국내에 알려진건 불과 5년전. 발빠른 컬렉터들이 선점하며 없어서 못팔정도로 인기를 끈 '붉은 그림'을 버린 용기가 용감하다.
'빨강색'으로만 칠하던 '붉은산수'는 오방색 축포터지는 '무당집'같은 그림으로 갈아탔다. 작가는 "자신은 물론, '붉은산수'에 은근 질릴법한 컬렉터를 위해서"라는 말도 여유있게 건넸다.

29일 여는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은 "또"와 "어?"가 교차한다.
우선 학고재 본관에 걸린 그림들은 미술시장에 익숙한 '붉은산수'가 저녁노을처럼 출렁인다. 식상하다 싶은 순간, 신관에 걸린 작품은 '어?' 이게 뭐지?'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붉은산수 이세현의 신작 분재회화가 걸린 학고재갤러리 전시장.

작품엔 빨주노초 무지개색이 춤춘다. 거대한 분재에 입혀진 빨강 초록 노랑색들은 잊고 있었던 '색동이불'이 생각나기도한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렸던 이전 그림과 달리, 신작은 형체가 풀어져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붉은 그림' 이세현을 지우는 듯한 인상이다.

24일 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 2006년이후 붉은 그림을 150여점 그렸다"며 "새 작업에 대해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지만 한국에 귀국한 것도 작업을 변화하려는 의지때문이었다"고 말했다.

2년전 영국에서 귀국해 현재 경기 파주에 살고 있는 작가는 10m만 걸어도 보이는 군사초소들과 개발되는 시골의 풍경을 보면서 '붉은색'으로만 계속그릴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작품은 작가의 '삶의 기록'이다. '붉은색'을 벗었지만 정치사회적인 작업은 여전하다. 유학당시 관념적으로 그렸던 '붉은 산하'는 '현실의 옷'을 입고 더욱 강렬해졌다.
“대도시 주변의 농촌은 공장이나 창고, 모텔, 음식점 등 도시인들을 살리기 위한 온갖 부대시설로 전락해 더욱 황폐해지고 있어요. "
그는 "영국에 있을땐 분단과 개발, 노스탤지어가 섞여 있는 한국의 자연을 담는 작업을 해왔는데, 한국에 와서 실제로 보니 느낌이 달라졌다"며 "이번 작품은 체감된 풍경"이라고 했다.

조각 무릉도원을 설명하고 있는 이세현작가//사진=박현주기자

'플라스틱 가든'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단 작품들은 '아름다움속에 내재된 잔혹함'이 내포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폭탄이 터진듯한 '분재회화'가 눈길을 끈다. 크고 거친 붓질로 마무리된 신작 '레인보우 인 헬' 시리즈는 ‘분재’를 통해 파괴된 국토라는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불꽃놀이하듯 화면에 터지는 폭죽은 외형적인 아름다움으로 본질을 잊게 하는, 현대화되고 근대화된 문명의 현란함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자연미와 인위적인 조형미를 포함한 종합적인 미를 보여주는 '분재'지만 작가는 분재의 겉모습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보다 형태를 갖추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에 집중했다.
"일명 다라이라고 불리는 고무대야에 아직도 꽃나무를 심어 가꾸는 것을 보면서 유치하지만 변치않는 모습에서 한국의 풍경을 발견했다"는 작가는 "인간이 분재에게 그러하였듯이 개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무자비함에 의해 망가진 우리국토의 모습과 왜곡된 우리나라 풍경을 분재에 담았다"고 말했다. 분재에 담긴 21세기판 '新 진경산수'다.

개발에 신음하는 분단국가의 비극적인 모습은 조각으로까지 전이됐다. 신관 전시장 지하 2층에 선보인 조각 '무릉도원'은 그야말로 사실적이다. 철근기둥위에 지어진 얼키설키 이어진 시멘트집들은 '미니멀리즘'으로 인상적이지만 알고보면 '군사초소'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매일 보면서 "이것이 한국 풍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작업했고, 역설적으로 '무릉도원'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붉은색을 벗었지만 여전히 '우리 국토와 우리산하'에 꽂혀있는 작가는 "예술의 출발점을 겸재 정선으로부터 시작했다"며 "정선처럼 되고싶다"고 했다.

'붉은산수'를 벗고 '오방색 시즌'을 맞은 작가는 두려움반 기대반으로 미술시장 반응을 기다리고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영국 미국등 국내외 전시장에서 이세현을 각인시킨 '붉은 산수'와 '분재회화' 신작을 한 번에 볼수 있다. 회화 21점 조각 4점을 선보인다. 또 미국 뉴욕의 페이스갤러리가 찍었던 판화 3점도 걸린다. 전시는 10월14일까지.(02)739-4937

'붉은 산수'로 알려진 이세현의 '비트윈 레드연작'이 한자리에 전시된 학고재갤러리.사진=박현주기자

◆작가 이세현=1967년 통영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런던 첼시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로필만보면 화려하다. 하지만 영국으로 가기전까지 소위 '무명의 설움'을 견뎌야했다. 조각·설치·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지만 17년간 작품을 한 점도 못 팔았다. 영국유학은 인생터닝포인트가 됐다. 2006년 런던 첼시예술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그가 그린 '붉은 산수'가 일약 히트를 쳤다. 당시는 세계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때이기도 했지만 졸업전에 선보인 작품이 모두 팔린 것. 군복무 시절 야간투시경을 통해 봤던 붉은풍경을 붉은색으로만 그린 '비트윈 레드'연작은 그렇게 유명해졌다. 인생역전. 런던미술시장에서 먼저 알려진후 2007년 국내 미술시장에도 빠르게 유명세를 탔다. 붉은색 때문에 국내에선 '빨갱이 그림이냐'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지만 붉은색만큼이 강렬하게 각인된 작품은 작업실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던 세계적인 컬렉터 울리 지그도 그의 작품 10여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미국), 올 비주얼 아트(영국), 제임스 유 컬렉션(중국) 등 세계 곳곳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