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하원 ’反정부 NGO=외국기관‘ 법안 채택

2012-07-13 21:38

 러시아 국가두마(하원)가 13일(현지시간) 반정부 성향의 비정부기구(NGO)에 ’외국 기관‘이라는 낙인을 찍는 법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하원은 이날 외국의 자금지원을 받아 정치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를 ’외국 기관‘으로 지정하는 법안에 대한 2, 3차 독회(심의)를 잇따라 열어 법안을 최종 승인했다. 독회를 마친 뒤 실시된 표결에서 의원들은 찬성 37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법안을 채택했다. 하원을 장악한 여당(통합 러시아당) 의원들이 법안 채택을 주도했다.
 
 ◇ ’반정부 NGO=외국기관‘ =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상원 심의와 대통령 서명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상원도 친(親) 크렘린계 의원들이 장악하고 있어 법안은 무난히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NGO 법안에 따르면 외국에서 자금 지원을 받아 정치 활동을 하는 NGO들은 법무부에 ’외국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단체‘로 자진 등록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NGO는 최대 100만 루블(약 3천4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정치 활동의 범위는 NGO가 국가정책 수행을 위한 국가기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하거나 사회여론을 형성하는 데 개입하는 경우로 폭넓게 규정됐다.
 법안은 또 ’외국기관‘으로 등록된 NGO들이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 기고문이나 자료를 게재할 경우 ’외국기관‘이란 점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같은 법안에 대해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은 NGO의 ’개방성‘을 높이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 발의에 동참했던 통합러시아당 소속 이리나 야로바야 의원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듯, NGO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들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야권이나 시민단체 등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새로운 법을 통해 반정부 성향의 NGO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외국 기관‘이라는 표현은 옛 소련 시절 자국 내에서 암약하던 외국 스파이나 국가반역자 등을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표현이다.
 
 새 NGO법은 외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NGO들에 ’외국기관‘이란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정부 편이 아닌 민간단체들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지적이다.
 
 옛 소련 시절부터 반체제 운동을 벌여오며 러시아 인권운동계의 ’대모‘로 통하는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대표 류드밀라 알렉세예바(84)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우리는 외국 정부의 기관원이 아니다”라며 ’외국 기관‘이라는 낙인이 찍히느니 차라리 자신이 이끄는 단체의 문을 닫겠다고 분개했다.
 
 ◇ 연이은 야권 옥죄기 조치 = 러시아 의회는 앞서 지난달 초 집회법 위반자에 대한 벌금을 무려 150배 인상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과격 행동을 하는 등의 집회법 위반자에 대해 핵물질 소유 등의 중대 범죄 행위에 물리는 것보다 더 큰 액수인 최대 30만 루블(약 1천60만원)까지의 벌금을 물리도록 함으로써 지난 12월 총선 이후 터져 나왔던 야권의 대규모 저항 시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야권은 이 법이 헌법이 보장한 의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의회 통과를 저지하진 못했다.
 
 하원은 뒤이어 11일 불법 콘텐츠를 갖춘 인터넷 사이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 인터넷 사이트들을 관계 당국이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고 폐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법안이다.
 
 하지만 정보관련 업체들과 시민단체 등은 이 법안도 무분별한 인터넷 검열에 악용될 수 있으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총선 이후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인터넷 언론이 반정부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점을 들어 정부와 여당이 인터넷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란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날 하원을 통과한 NGO 법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3기 집권 전 불거진 대규모 야권 시위에 대해 러시아 정세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외국 배후 세력이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시위를 조장하고 있다는 견해를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NGO 법은 러시아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외부 세력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발의된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