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 속'으로 빠져든 녹색금융
2012-04-24 16:23
금융권 큰 리스크로 회피…정부 주도 발전모델 절실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지난 2009년 본격적으로 추진돼 온 '녹색금융' 산업이 길을 잃은채 표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녹색금융 상품을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으며, 녹색금융협의회도 정기모임도 열지 않은채 유명무실화 된지 오래다.
이에 전문가들은 "리스크(위험) 부담이 높은 녹색금융 특성상, 민간기관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주도해 녹색금융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4일 녹색금융종합포털 및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및 지방은행에서 녹색금융 예·적금을 출시한 것은 2010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기업 대출의 경우, 지난해 출시된 대출은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이 지난해 8월 각각 내놓은 '신(新) 녹색기업대출'과 '신재생에너지 상생보증부대출'이 전부다.
'신 녹색기업대출'의 3월말 현재 대출잔액은 3587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2조원이 넘는다.
'신재생에너지 상생보증부대출'은 신재생에너지협회 및 신용·기술보증기금의 보증서 발급 등을 대출 자격으로 내걸고 있다. 상대적으로 리스크 부담은 낮지만 까다로운 조건 탓인지, 이달 20일 현재 실적은 6건에 불과하며 잔액도 64억원에 그쳤다.
은행 등 금융기관 및 금융정책당국 대표들로 구성돼 지난 2009년 공식 출범한 '녹색금융협의회'도 잠잠한 상태다.
협의회는 이달 중 비공식 모임을 1번 가진 것을 제외하면, 지난해 3월 이후 한번도 정기 모임을 가진 적이 없다. 당초 분기마다 한번씩 모임을 갖고 녹색금융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기로 했지만, 이는 의무사항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 이처럼 녹색금융에 소극적인 것은, 에너지와 태양광 등 녹색기술을 영위하는 사업 자체가 갖는 리스크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판단할만한 평가 시스템도 전무한 상황이다.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녹색금융은 리스크 부담이 크고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인데, 개인 예금을 받아 기업체에 대출을 해주는 은행 구조상 녹색산업에 투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노 연구위원은 이어 “또한 실질적으로 각 산업이 가진 리스크를 평가하고 전망할만한 평가 툴(tool)이 없어, 자금이 있는데도 실제로 지원이 필요한 기업에 흘러들어가질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녹색금융산업을 민간기관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009년 녹색금융이 신성장동력에 선정된 이후 전체 융자액의 80%를 정책금융기관이 담당해왔다"며 "현재 세계 여러 국가들의 화두는 '서스테이너블 그로스(지속가능한 성장)'로, 녹색금융의 당위성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부 주도로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희진 연구위원은 향후 녹색금융 발전 방안에 대해 "영국이 녹색금융만 담당하는 투자회사를 만든 것처럼,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로 '녹색 전문 투자금융'회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사업성에 대한 명확한 평가모델을 만들고 은행 등 민간기관이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