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Y방정식> 정치판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었다

2012-03-07 10:29

(아주경제 이상준 기자) # 은나라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자 한비자(韓非子)가 그 결과를 두려워하며 말했다.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면 국을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 아닌 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에 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콩이나 콩잎 반찬은 먹지 않을 것이고 쇠고기나 코끼리, 표범 고기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고기를 먹게 되면 아무래도 짧은 털가죽 옷을 입고 초가집에서는 살 수 없을테니 반드시 비단옷을 입어야 하고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상아 젓가락의 격에 맞추다 보면 은나라 안의 재물을 모조리 긁어 모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한비자가 걱정한 대로 5년 후 주왕은 고기로 밭을 만들었고, 술통으로 언덕을 만들어 올라갈 수 있게 했고, 술로 연못을 만들어 놀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주왕이 사치와 낭비를 일삼아 결국 은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2010년 말에 불기 시작한 소셜쇼핑몰 열풍는 상품을 반값에 사는 시대를 열었다. 커피 한 잔에서부터 햄버거, 여행상품, 심지어 휴대전화 케이스에 이르기가지 반값으로 팔다 보니 이제 반값이 아니면 할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이런 반값행진은 비단 소셜쇼핑몰만의 얘기는 아니다. 총선과 대선 등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는 지금 소셜쇼핑몰조차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반값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한비자의 선견지명과 같이 미세한 것을 보고도 다가올 일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무상복지가 가져다줄 폐해가 눈에 보이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어찌 현명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을까?

◆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었다

역대 대선에서 경제 전반에 끼칠 영향이나 재원 마련에 대한 고려 없이 표만 얻으면 된다는 ‘선심성 공약’을 마구 내놓았다. 정부 지출을 늘리겠다고 약속하면서 오히려 세금을 깎겠다는 ‘허황된 공약’과 정책 실시로 인한 효과나 성과 등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는 ‘한 줄짜리 부실공약’도 쏟아져 나왔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임기 내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달성’, ‘연평균 7% 수준의 성장 지속’, ‘평균 실업률 4% 이하로 안정’, ‘50억 달러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 지속’을 내걸었지만 국제수지 흑자를 유지하겠다거나 물가상승률을 2~3%로 이어가겠다는 공약은 실천조차 되지 않았다.

국제수지는 1988년 이후 적자를 기록해 1991년엔 적자폭이 87억 달러에 이르렀다. 물가상승률은 노태우 재임기간 동안 평균 7.8%에 달했다. 특히 1991년에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폐기함으로써 경제민주화는 후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2년 내 물가 3% 이하 유지’, ‘1994년 이후 금리 한 자릿수 유지’, ‘1994년부터 흑자경영시대 개막’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각종 비자금 사건, 측근 구속, 한보사태,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 등으로 공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특히 ‘쌀 수입 개방 절대 불가’ 공약은 우루과이라운드(UR) 체결로 지켜지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통령은 ‘2000년대 초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물가 3% 이하 유지’, ‘금리 7% 이하유지’, 한 해 6~7% 경제성장‘이라는 공약을 내놨으나 이 또한 외환위기 속에서 대부분 빈 공약으로 끝났다. 여기에 ’복지예산 30% 증액‘, ’농가부채 탕감‘ 공약도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경제공약은 ’연 7% 경제성장‘, ’250만 개 일자리 창출‘, ’공공임대주택 50만 호 건설‘ 등 이었다. 하지만 집중적으로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무산되는 바람에 다른 공약들도 지키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생공약으로 ’경제 7% 성장‘, ’300만 개 일자리 창출‘, ’사교육비 절감‘, ’국가 책임 영ㆍ유아보육 실시‘, ’중소기업ㆍ자영업자 육성‘, 서민 주요 생활비 30% 절감’, ‘신혼부부 보금자리주택 12만 호 공급’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간한 ‘경실련 MB정부 민생공약 평가 보고서’를 보면 이명박 정부의 민생공약에 대한 점수가 대체로 D~F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평균점수는 D였다. 공기업 민영화로 6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경제성장률 7%를 이루고, 일자리 300만 개를 만들려고 했지만 전제 조건이 무너지면서 이 역시 허무한 공약으로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백지화하기로 한 동남권 신공항 외에도 ‘MB노믹스’의 핵심 공약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유로 지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야당과 좌파단체들뿐만 아니라 보수정부의 기반지역이라는 영남권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기대감만 잔뜩 높여 놓았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난 데 따른 배신감, 허탈감과 무관하지 않다.

정책이나 공약은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유세 직전에 갑자기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이나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와 과학벨트 공약은 갑작스럽고 일과적인 공약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후대에 피해를 주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권자들은 이런 공약들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실현 가능성 여부가 공약을 만드는 단계에서 공론화됐더라면 이후 소모적인 농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